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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 내 친구 연심아! (short version)

내 친구 연심아! (short version)

내 친구 연심아!

그동안 참 많은 세월이 흘렀구나,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 그 십년이 한 번 하고도 반이 지났으니... 돌이켜보면 마냥 즐겁고 행복했던 우리의 어린 시절이 정말 그립다. 우린 항상 가장 친하면서도, 누가 더 공부를 잘하는지, 누가 더 예쁜지, 누가 더 선생님의 사랑을 많이 받는지, 누가 더 남자학생들에게 인기 있는지를 겨루며 살았지. 그때는 팽팽한 신경 줄을 서로 당기고 밀며 경쟁했어도 결국 우린 가장 친한 친구였어, 내가 그 세상을 하직하고자 수면제를 먹고 서서히 잠들어 죽어가던 그 때, 그 옆자리를 지켜주었던 것도 바로 너였지. 우린 정말 잊지 못 할 진실한 친구야.

아무 소식을 모르는 먼 친척들보다도 난 지금 네 소식이 더 궁금하고 니 얼굴이 보고 싶구나. 남들은 다 탈북해서 이렇게 남조선으로 들어오고 있는데 그리도 똑똑하고 영리하기에 더할나위 없던 연심이 넌 왜 오지 못하는거니? 아니면 여기 와서도 서로 소식을 모르고 있는건 아닌지, 정말 안타깝고 속상하구나.

너도 잊지 않고 있겠지?! 내 힘으론 도저히 가족을 먹여 살릴 수 없어 절망에 빠져 죽으려고 했던 그 때, 수면제를 먹고 삼일 만에 깨어났던 그때를 말이다. 그 때 난 탈북을 선택하지 않으면 어차피 그 땅에선 또다시 내손으로 나를 죽여야 한다는 걸 알았단다. 그래서 목숨 걸고 탈북을 했고 지금은 이렇게 한 민족이 사는 나라 대한민국 서울에서 살고 있고 이렇게 네게 보내는 편지도 쓰고 있단다.

연심아, 난 여기와서 먹을 것이 없어 교원대학까지 그만두었던 그 한을 다 풀었단다. 남조선 사람들도 입학하기 어려운 4년제 대학교에 국가의 혜택으로 무료로 입학을 했고 졸업까지 다 마쳤어, 지금은 2만 5천명나 되는 탈북자들을 품어주고 잘 살도록 지원해주는 대한민국과 사회에 보답하려고 사회복지사로 열심히 일을 하고 있단다. 성실한 노동으로 돈을 벌어 내 가족을 먹여 살리고, 나의 꿈도 한도 모두 이루고 행복하게 살고 있단다. 넌 아마 아직도 생계를 위해 하루하루 장사의 길에서 시들어 가고 있는지도 모르겠구나. 너랑 같이 장마당에 나가면 맨 바닥에 쓰러져 죽어가고 있는 사람들을 보던 일이 생생히 떠오른다. 그 불쌍한 사람들을 그냥 지나치며 “동정하지말자! 내일은 우리도 저렇게 된다!”라는 말을 속삭여야만 했던 그때가 지금은 이다지도 가슴 미어지게 아파오는구나.

연심아, 난 항상 그 때를 생각하면서 앞으로 통일이 되어 고향에 돌아가면 남한처럼 국가가 국민을 책임져 준다는 게 진정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사회복지의 길을 끝까지 가려고 한다. 꿈을 꾼다는 것이 무엇이고 그 꿈이 이루어지는 세상을 만드는데 일생을 바쳐 일하고 싶어,

연심아, 우리가 고등중학교를 졸업하던 그때, 열정 넘치는 청춘들이 꽃피울 수 없는 꿈을 슬퍼하며, 아무런 희망도 없는 현실에 절망하며, 소주 한 잔 기울이며 부르던 노래를 기억하니? 남한 노래인줄 알면서도 애써 연변노래라 우기던 노래들. “백만 송이 장미”, “ 감수광”, “바람, 바람, 바람”, “아 목동”. 몰래 숨어서 듣고 부르며 우린 상처받은 서로의 마음을 달래고 위로받곤 했었잖니.

그때 우리가 불렀던 그 노래를 보내며 고통의 긴 뒤안길에 피어오를 백만 송이 장미를 꿈꿔본다. 그리고 다시 만날 그날을 약속하자. 꼭 살아서 만나 못다한 지난세월을 나누자꾸나. 부디 건강해야 한다. 나의 가장 사랑하는 친구 연심아.

내 친구 연심아! (short version) My friend, my heart is in the right place (short version)

내 친구 연심아!

그동안 참 많은 세월이 흘렀구나,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 그 십년이 한 번 하고도 반이 지났으니... 돌이켜보면 마냥 즐겁고 행복했던 우리의 어린 시절이 정말 그립다. 우린 항상 가장 친하면서도, 누가 더 공부를 잘하는지, 누가 더 예쁜지, 누가 더 선생님의 사랑을 많이 받는지, 누가 더 남자학생들에게 인기 있는지를 겨루며 살았지. 그때는 팽팽한 신경 줄을 서로 당기고 밀며 경쟁했어도 결국 우린 가장 친한 친구였어, 내가 그 세상을 하직하고자 수면제를 먹고 서서히 잠들어 죽어가던 그 때, 그 옆자리를 지켜주었던 것도 바로 너였지. 우린 정말 잊지 못 할 진실한 친구야.

아무 소식을 모르는 먼 친척들보다도 난 지금 네 소식이 더 궁금하고 니 얼굴이 보고 싶구나. 남들은 다 탈북해서 이렇게 남조선으로 들어오고 있는데 그리도 똑똑하고 영리하기에 더할나위 없던 연심이 넌 왜 오지 못하는거니? 아니면 여기 와서도 서로 소식을 모르고 있는건 아닌지, 정말 안타깝고 속상하구나.

너도 잊지 않고 있겠지?! 내 힘으론 도저히 가족을 먹여 살릴 수 없어 절망에 빠져 죽으려고 했던 그 때, 수면제를 먹고 삼일 만에 깨어났던 그때를 말이다. 그 때 난 탈북을 선택하지 않으면 어차피 그 땅에선 또다시 내손으로 나를 죽여야 한다는 걸 알았단다. 그래서 목숨 걸고 탈북을 했고 지금은 이렇게 한 민족이 사는 나라 대한민국 서울에서 살고 있고 이렇게 네게 보내는 편지도 쓰고 있단다.

연심아, 난 여기와서 먹을 것이 없어 교원대학까지 그만두었던 그 한을 다 풀었단다. 남조선 사람들도 입학하기 어려운 4년제 대학교에 국가의 혜택으로 무료로 입학을 했고 졸업까지 다 마쳤어, 지금은 2만 5천명나 되는 탈북자들을 품어주고 잘 살도록 지원해주는 대한민국과 사회에 보답하려고 사회복지사로 열심히 일을 하고 있단다. 성실한 노동으로 돈을 벌어 내 가족을 먹여 살리고, 나의 꿈도 한도 모두 이루고 행복하게 살고 있단다. 넌 아마 아직도 생계를 위해 하루하루 장사의 길에서 시들어 가고 있는지도 모르겠구나. 너랑 같이 장마당에 나가면 맨 바닥에 쓰러져 죽어가고 있는 사람들을 보던 일이 생생히 떠오른다. 그 불쌍한 사람들을 그냥 지나치며 “동정하지말자! 내일은 우리도 저렇게 된다!”라는 말을 속삭여야만 했던 그때가 지금은 이다지도 가슴 미어지게 아파오는구나.

연심아, 난 항상 그 때를 생각하면서 앞으로 통일이 되어 고향에 돌아가면 남한처럼 국가가 국민을 책임져 준다는 게 진정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사회복지의 길을 끝까지 가려고 한다. 꿈을 꾼다는 것이 무엇이고 그 꿈이 이루어지는 세상을 만드는데 일생을 바쳐 일하고 싶어,

연심아, 우리가 고등중학교를 졸업하던 그때, 열정 넘치는 청춘들이 꽃피울 수 없는 꿈을 슬퍼하며, 아무런 희망도 없는 현실에 절망하며, 소주 한 잔 기울이며 부르던 노래를 기억하니? 남한 노래인줄 알면서도 애써 연변노래라 우기던 노래들. “백만 송이 장미”, “ 감수광”, “바람, 바람, 바람”, “아 목동”. 몰래 숨어서 듣고 부르며 우린 상처받은 서로의 마음을 달래고 위로받곤 했었잖니.

그때 우리가 불렀던 그 노래를 보내며 고통의 긴 뒤안길에 피어오를 백만 송이 장미를 꿈꿔본다. 그리고 다시 만날 그날을 약속하자. 꼭 살아서 만나 못다한 지난세월을 나누자꾸나. 부디 건강해야 한다. 나의 가장 사랑하는 친구 연심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