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90화 공작원 김현희
"제 90화 공작원 김현희" 잠이 오지 않는다. 방금 티비에서 본 김현희의 얼굴이 자꾸만 눈앞에 어른거린다.
어릴 적 영화나 소설 같은데서나 볼 수 있었던 대남공작원! 시시각각 밀려오는 위험속에서도 전투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아찔한 순간순간들을 간신히 넘기며, 용맹을 떨쳐온 투사들, 사형장에 끌려가는 마지막 순간에도 웃으며 죽을 줄 아는 그들은 나라와 인민의 장한 아들 딸로 역사에 길이 남아 영생하는 삶이였다.
남한에 와서 처음 공작원 김현희 대해 알게 되었고, 그의 수기를 읽었을 때 받은 충격은 아직도 남아있다. ‘적'들에게 잡히는 마지막 순간 사랑하는 어머님 모습을 떠올리며 눈물을 흘리는 그도 평범한 한 여인이였지만, 자신의 죽음이 오직 조국을 위한 성스럽고 명예로운 길이라는 확고한 신념으로 불타 있었기에 그는 주저없이 독약앰플을 깨여물었다. 그런데 그가 가짜범인이라는 론란에 휘말려 20여년을 맘고생하며 살고 있다고 한다. 괴이한 일이다. 물론, 사람들은 아니라고 하는데 정작 본인은 살인자라고 우기는 것도 이상한 일일법도 하겠지만, 그보다는 김현희가 “어디서 나타난 존재인지도 모르겠다”며 가짜를 주장하는 사람들의 말이 더 괴상한 일이 아닌가,
벌떡 일어나 다시 그의 수기를 펼쳐들었다. 어릴 적 선생님의 사랑을 독차지하며 자란 이야기며, 이잡이를 위한 “20호” 이야기, 더욱이 아역에 뽑혀 영화촬영도 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정말 진짜처럼 보이기 위해 만든 것치고는 너무나 자세히 자신의 이야기를 소개했고, 공감되는 부분도 많다.
정말 그가 가짜라면 누가 그를 대신해서 글을 써주었단 말인가, 그렇게 북한 사정을 자세히 설명할 수 있고,더우기 공작원의 세세한 훈련과정이며 심리상태를 그렇게 잘 표현할 수 있는 사람은 과연 누구란 말인가,
어데서 데려왔는지도 모른다는 그 발언 자체부터가 무책임한 것이 아닐까, 그렇게 철저히 가짜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김현희가 누군지를 밝히는데는 왜 그리 허술할까, 그가 인큐베이터에서 20년 넘게 그렇게 미모의 처녀로 자랐을리는 없지 않는가, 해외에서 살았건, 남한에서 살았건, 북한이든, 일본이든, 그가 살았던 곳에는 분명 흔적이 남아있을 것이다. 어데서 데려왔는지 모른다는 말을 변호한다면, 한국 정부에서 당시 폭파를 꾀하기 위해 20년 전부터 김현희를 누구도 몰래 키워왔단 말이 아닌가, 말도 안된다.
나라와 인민을 위한 혁명전사로 키운답시고 데려갈 때는 어릴 적 사진마저도 모조리 흔적도 없애버리는 북한이 아니고서야 어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겠는가,
당시 폭파사건도 서울 올림픽을 질투한 김정일의 밸이 꼬여 감행된 처참한 동족상잔의 비극이었으니, 보통 사람의 머리로는 상상도 못하는 일이다. 하기야 말도 안되는 신격화속에 자기가 정말로 하늘이 낸 무슨 대단한 인물인양 이상한 착각에 빠져 나라를 제 멋대로 쥐락펴락 하다못해 자기 기분이 뒤틀리면 그 어떤 짓도 서슴치 않는 김정일의 악행을 누가 감히 상상이나 할 수 있겠는가,
김현희의 고백은 그냥 고백이 아니다. 한때 조국 통일을 위한 길에 ‘김정일의 혁명전사'로 역사의 한 점 불꽃이 되려했던 자신이 “꿈꾸는 허수아비”에 지나지 않았다는 것을 민족앞에 역사앞에 더없는 책임감을 지니고 심장으로 웨치는 절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