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작원 초대소, 네 번째-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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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원 초대소, 네 번째
다음 날 아침 식사를 마치자 정 지도원이 대학생복 차림의 내 또래의 녀학생을 데리고 왔다.
“이 동무가 김숙희 동무요. 앞으로 서로 도와 주며 잘 생활 하기 바라오,”
이때 정 지도원으로 부터 소개받은 김숙희라는 녀동무와는 공작원 생활 7년 8개월중 절반 이상을 같이 생활했다. 보통 녀자 둘이 함께 생활하면 삐죽 거리며 잘 싸운다는데 숙희와는 아주 잘 맞는 편이였다. 나중에는 말하지 않아도 서로 통할 정도였다. 초대소가 제2의 나의 집이라면 숙희는 제2의 녀자 형제나 마찬가지였다. 황금같은 처녀 시절을 함께 보냈으므로 그 정이 더 각별한지 모르겠다.
이처럼 오랜 기간을 함께 생활 하며 동고동락 하다 나니 공작원으로서는 절대 용납되지 않는 서로의 신원에 대해서도 알게 되였다.
숙희의 나이는 나보다 한 살 아래이며 평남 순천에서 태여났다. 그의 아버지는 좌급 군관이였고 어머니는 식료품 상점 판매원으로 일했다. 순천에서 중학교까지 졸업하고 평양경공업대학 일용학과에 입학하였으나 1학년 때 소환되였다.
숙희는 얼굴이 넓적한 편이지만 눈이 크고 피부가 흰 미인형이였으며 키도 160cm 정도 되여 균형이 잡힌 몸매를 가졌다. 성격이 순하면서도 맺고 끊는게 분명하기 때문에 그동안 한 번도 나와 다투거나 토라진 일이 없었다.
정 지도원은 숙희와 나를 소파에 앉혀놓고 초대소 규률에 대하여 교육했다.
‘아침 청소와 식사는 8시까지 끝낼것' ‘학교에 가기 전까지 김일성 저작선집과 혁명투쟁기를 자체 학습할 것' ‘낮에는 초대소 문 밖으로 절대 나가지 말것' ‘밤에는 가벼운 산보를 할 수 있는데 반드시 초대소 어머니에게 알리고 갈 것' ‘공급원, 운전수 등 초대소를 드나드는 외부 인원과는 절대로 만나지 않도록 주의할 것' ‘자신의 경력이나 신분에 대하여는 두 사람끼리는 물론 다른 사람에게도 알리지 말 것' ‘초대소 건물을 나설 때는 반드시 색안경과 마스크를 쓰고 우산을 들고 다니다가 사람을 만나면 우산을 펼쳐서 얼굴을 가릴 것' 주의 사항은 거의 모두 신분과 안면 노출을 조심하여 다른 사람이 알지 않도록 하라는 내용이였다. 이것은 임무를 받고 적후에 들어갔을 때 신분이나 안면을 아는 사람 때문에 탄로되여 붙잡히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한 것이니 자기 스스로 잘 지켜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담당 부부장이 저녁식사 전에 방문했다. 부부장은 다름 아닌 선발당시 세 번째 면담에서 당에서 시키는 일을 목숨 바쳐 할 각오가 되어 있느냐고 묻던 그 사람이였다. 그가 바로 강해룡 부부장으로 신상옥, 최은희 부부 랍치를 직접 지휘했던 사람이다.
그는 60세 가량의 평안남도 출신으로 약 170cm의 키와 보통의 체격을 갖추고 있었다. 얼굴은 타원형이고 눈은 작지만 독기가 서려 있어 감히 무시할 수 없는 근엄함을 풍겼다. 나는 그와 1980년까지 두 달에 한 번씩은 접촉해야만 했다. 강해룡 부부장은 1983년경에 부화사건에 관련되여 비판받고 해임철칙된 것으로 알고 있다.
조사부 부부장이라면 무시할 수 없는 직책의 신분이였다.
“동무들은 앞으로 조국통일을 위한 부문에서 싸우게 되는데 훌륭한 혁명전사가 되기 위해 열심히 학습해야 하오.”
강해룡 부부장은 높은 간부답게 점잖게 우리가 할 일을 일러주며 여러 가지 당부를 잊지 않았다.
나레이션 : 대남공작원 김현희의 고백, 랑독에 박수현이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