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의 고백, 서른 한 번째-1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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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의 고백, 서른 한 번째
어서 그 자리를 뜨고 싶은데 통로의 대열은 좀체 줄어들지 않았다. 대부분의 남조선 사람들은 짐을 그대로 둔 채 빈손으로 내렸다. 비행기 문을 나설 때는 누군가가 뒤에서 홱 낚아챌 것만 같았다. ‘이보세요. 이거 당신들 물건 아니요?' 보안요원이 조선말을 하며 폭발물을 우리 손에 들려줄 것도 같았다. 문 앞에서 여승무원이 고개를 숙이며 공손하게 절을 했다. 긴장해서 온몸에 힘이 들어간 탓인지 걸음을 옮길 때마다 다리가 부들부들 떨렸다. 허약한 김 선생은 어떤지 살펴줄 겨를이 없었다. 우리는 그렇게 정신없이 비행기를 벗어나고 있었다.
비행기에서 내려서자 아부다비공항 안내원이 서 있다가 갈아타는 손님에게서는 항공권과 여권을 걷어들이고, 내렸다가 다시 타야 할 남조선 사람들에게는 노란 카드를 주었다. 김 선생과 나는 당황했다. 당초의 노정 계획상으로는 아부다비공항에 도착 후 바로 항공사를 통해 탑승 수속을 하고 아부다비- 암만- 로마행의 요르단 항공 603기편으로 로마로 탈출하기로 되어 있었다. 그런데 전혀 예상하지 않았던 일이 벌어진 것이다. 공항 안내원의 항공권 제시 요구였다. 만일 타고 온 비행기가 빤히 보이는 상황에서 암만- 로마행 항공권을 제시할 경우 그 당장에 수상한 사람으로 의심을 살 것이 틀림없었다. 또한 로마행 항공권은 아부다비가 출발지로 되어 있어 원칙적으로 통과 입국사증을 받아 일단 아부다비 공항에서 아랍에미레이트에 입국하는 형식을 취한 뒤 다시 출국 수속을 하여 비행기에 탑승하여야만 했다. 그러나 아랍에미레이트는 일본과 협정이 되어 있지 않아 통과 비자를 받을 수 없다는 사전지식을 가지고 있어 우리는 공항 안내원에게 타고 온 항공권을 제시할 수밖에 없었다.
항공권을 걷어 들이는 문제는 평양에서 노정 연구시에도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며, 다른 공항에서는 통과여객에게서 항공권을 걷어들이는 일은 없었다. 그 안내원은 우리를 통과여객 대합실에 기다리게 해 놓고 자신이 수속을 해주겠다며 사라졌다. ‘어쩌죠? 말도 차마 못하고 눈빛으로만 김 선생에게 물었다. ‘우선을 아부다비부터 벗어나고 봐야 해.' 김 선생 역시 눈짓을 했다.
일이 엉뚱한 방향으로 틀어지는 것 같아 속이 탔다. 얼마 뒤 잠시 내렸던 남조선 노동자들이 비행기 출발 시간이 되자 속속 빠져 나갔다. 우리는 현재 처한 우리의 사정은 잊은 채 기쁜 눈빛을 교환했다.
‘기어이 해냈어. 정말 큰일을 해낸거야.' 나는 기쁨과 안도감에 가슴 뿌듯한 심정이었다. 폭발물 장치를 못하는 등의 우리의 임무 불
이행은 벗어난 것이었다. 이제부터 잘못되는 일은 나 하나 죽어 비밀 보장만 하면 되니 별 문제가 없다는 자신감도 솟았다.
아부다비 시간으로 새벽 2시가 넘은 시간이라 공항 내 손님도 별로 없고 조용했다. 우리 여권을 회수해 간 안내원도 저쪽 탁대에서 다른 직원들과 잡담을 하며 가끔 우리를 힐끗힐끗 쳐다보았다. 그러나 우리는 바레인 행 항공권과 여권을 안내원에게 준 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 되어 무료한 시간을 보냈다. 할 수 없이 몇 번 안내원에게 가서 우리 여권과 항공권을 돌려달라고 졸라봤으나 그는 비행기 시간이 되면 돌려 줄테니 아무 걱정 말고 가 앉아 있으라고 했다. 정말 속이 탔다. 비행기가 폭파될 시간을 계산해 보니 아무다비 시간으로 새벽 6시쯤이 되었기 때문에 이렇게 아부다비서 우물쭈물하다가는 모든 게 들통 날 것 같았다. 김 선생은 다시 한번 이번 노정이 처음부터 잘못된 것이라고 투덜거렸다. 혼자는 계속 투덜거리면서도 나에게는 안심시키려고 그러는지
“우리가 바레인에 가서 로마행 비행기만 갈아타면 별 문제가 없을거야. 그리고 항공기 사고는 빨리 해결되지 않기 때문에 우리가 평양으로 돌아간 한참 뒤에나 난리가 날 테니 두고 봐. 지금까지 쭉 그랬어.”
하고 나에게 말했다. 그의 설명에 나는 잠깐이나마 위안을 얻었다.
나레이션 : 대남 공작원 김현희의 고백, 랑독에 박수현이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