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의 고백, 마흔 세 번째-211
눈물의 고백, 마흔 세 번째
나는 언젠가 파리에서 옷을 구입하다가 ‘made in korea' 를 보고 질겁하던 일이 생각났다. 그렇다면 의류뿐 아니라 화장품도 수출을 한단 말인가? 나는 그만 할 말을 잃고 입을 다물었다. 수사관들 앞에서 말을 하지는 않았지만 나는 내심 이 많은 상품들이 외제가 아니라는 사실에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다.
나는 백화점 내를 둘러보다가 여수사관이 사주는 스카프 하나를 받아들고 밖으로 나와 지하도를 건너 다시 명동을 걷기로 했다. 올 때와 마찬가지로 거리에는 사람끼리 걸려서 걷기가 힘들 정도로 인파가 넘치고 있었다. 그렇다고 바쁘게 볼 일을 보러 나온 사람들 같지도 않았다. 삼삼오오 짝을 지은 젊은 남녀들이 깔깔거리며 혹은 소곤거리며 거리를 활보하는 모습이 너무 자유로워 보였다. 길을 건너 조금 걷자니 커다란 남비를 걸어 놓고 종을 치던 남자가 아직도 그대로 종을 휘둘러대고 있었다. 나는 ‘저것이 무엇인가' 하고 유심히 보았다. 지나가던 사람들이 그 남비 속에 돈을 집어넣는 것을 알았다. 순간적으로 남조선에는 거지가 많다고 하더니 저렇게 군인 같은 제복을 입은 거지까지 다 있는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저건 뭐예요?”
내 상상력으로는 도저히 짐작할 수가 없었다.
“구세군 남비라는 건데 일종의 종교 단체로 불우한 이웃을 돕기 위해 모금을 하고 있는거야.”
수사관이 설명하며 천원짜리 한 장을 남비에 넣으라고 쥐여준다. 나는 그 돈을 받아들고 바로 그 옆으로 걸어가면서도 돈을 집어넣지 못했다. 너무 쑥스러웠다. 구세군 남자와 주위 사람들이 나만 보는 것 같고 그 옆에 가까이 가니 온몸이 긴장되었다.
“일 년 내낸 저렇게 돈을 모읍니까?”
“아니, 크리스마스와 연말을 전후해서 며칠간만 모금을 해. 오늘이 크리스마스 이브거든.”
왜 그렇게 거리 전체가 들뜬 분위기인지 그제서야 나는 깨달았다. 북에서는 크리스마스를 특별한 날로 생각지 않는다. 또 그날이 무슨 날인지 정확하게 알고 있는 사람도 그리 많지 않다. 단지 서양에서는 크리스마스가 휴일이라는 정도는 모두 알고 있다. 나는 영화에서 크리스마스가 서양 사람들의 축제일이며 먹고 마시고 취해서 떠들썩하게 지내는 날로 알았다. 크리스마스 트리와 은종도 보았고 징글벨이라는 노래를 부르는 것도 알았다. 그렇지만 서양이 아닌 남조선에서도 그날이 축제 분위기라는 점에는 납득이 가지 않았다.
‘그렇지. 미제국주의자들의 꼭두각시들이니까 미제의 축제를 함께 즐길 수밖에 없겠지. 문화와 풍습까지도 지배되다니..' 나는 크리스마스가 무슨 날인지 정확히는 몰랐지만 이렇게 들뜬 분위기로 보아 정말 저들에게는 기쁜 날이라는 느낌이 피부에 와닿았다. 선물꾸러미를 든 사람들, 길거리에 카드를 펼쳐 놓고 파는 젊은 남녀들, 불우이웃을 돕자고 외치는 구세군 남비....그 사람들 얼굴 모두에 아무런 꾸밈도 없이 즐거워 보였다. 나는 알지 못할 서글픔을 느꼈다. 다들 한마음으로 통하고 있는데 나만 그들과 다른 존재인 것 같았다. 나는 내 스스로 소외된 존재임을 시인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를 위시한 일행은 남대문시장으로 갔다.
“여기가 서울을 대표할 만한 큰 시장이야. 서민들이 모여 장사하고 서민들이 물건을 싸게 사기 위해 나오고 하는 곳이지.”
수사관의 설명이 아니더라도 아까 백화점 분위기와는 전혀 다른 것을 알 수 있었다. 백화점과 명동에는 잘 차려 입은 사람들이나 젊은 사람들이 많이 눈에 띄었는데 남대문시장에는 일반적으로 편하게 대할 수 있는 아주머니, 아저씨들이 대부분이었다.
나레이션 :대남공작원 김현희의 고백, 랑독에 박수현이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