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5화 동행
어지간히 술 기운이 오른 언니의 두 볼이 발그스레 상기되었다. 벌써 맥주 다섯 병 째다. 아직도 성이 안차는지 벌컥 벌컥 들이키는 언니가 오늘은 유난스러웠다. 뭔가 작심한 듯했다.
엄청난 어려움을 안고 있는 듯 보였다. 나도 기분에 맞추느라 맥주를 들이켰다. 드디어 언니가 입을 열었다.
나라 : 정임씨, 사는 게 왜 이리 힘들어?
반쯤 뜬 언니의 눈은 말 하지 않아도 많은 걸 예시해주었다. 난 조금은 당황하기도 했다. 보통 남한 사람들은 자신의 이야길 잘 하지 않으려고 한다. 특히 집안의 일에 대해, 더욱이 남편에 대해서는 더더욱 그러하다. 자신의 속 마음을 상대가 알아챌가봐 내숭만 떠는 남한 여자들, 나라 언니가 고맙다는 생각마저 든다. 드러내기 쉽지 않은 이야기를 나한테 하는 것이 고맙고, 오래 만에 고향친구 만나는 착각마저 들기도 했다.
고향에선 하고 싶은 이야기 친한 친구에게 다 하는 편이다. 그래서 아마 스트레스란 걸 모를지도 모른다. 거기선 울화병이라고 하는데, 그런 말은 가끔씩 듣는 병명이었다. 문화가 다른 건 어쩔 수 없겠지만, 터뜨리고 싶어도 그렇게 하지 못 한다는게 참 안타깝다.
어느 새 혀까지 꼬부라진 라라언니가 노래방엘 가자며 다짜고짜 내 손을 잡아 끌었다. 윗층에 있는 노래 방에 올라가는데 쿵짝쿵짝 음악소리가 어찌나 큰지 건물이 다 춤 추는 것 같았다.
시끄러운 소음소리를 뚫고 안내원을 따라 한 방안에 들어서는데, 잽싸게 언니가 마이크를 찾아 들고 노래를 틀었다.
노래 : 누가 나와 같이 함께 울어 줄 사람있나요 누가 나와 같이 함께 따뜻한 동행이 될까 눈물을 글썽이며 부르는 언니의 모습을 올려다 보는 순간 가슴이 뭉클했다. 여직껏 콧대가 높다고만 생각 했던 남한 여자들의 인상이 깨여지는 순간이었다.
돈이 없는 것 보다는 인생에 따뜻한 마음을 나눌 사람이 없다는 설움이 더 큰 언니를 바라보며 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붉어졌다. 이 세상에 돈이면 못해내는 일이 없겠지만 또 돈이 못하는 것도 있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사람의 마음을 사는 것이 아니겠는가, 라라언니도 분명 경제적 어려움 보다는 마음으로, 진정한 사랑으로 이 난국을 헤쳐나가지 못하는 것이 더 힘들고 괴로울 것이다. 울며 노래하는 언니를 꼭 안아주었다. 빈 가슴 채울 때까지 사랑하고 싶다는 노래가사가 이 가슴 속에 파고들었다.
노래 : 사랑하고 싶어요 빈 가슴 채울 때까지 사랑하고 싶어요 살아 있는 날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