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 칼국수 레시피의 비밀 / 음식은 어떻게 신화가 되는가 / 칼럼니스트 / 황교익
옛날 이야기를 떠올려 보자.
흥부전, 토끼전,
심청전 등 우리가 기억하는
구전 설화 속에는 빠짐없이 등장하는 장면이 있다.
바로 먹을 것에 대한 묘사나
음식을 먹는 장면이 그것이다.
우리는 매일 무언가 먹는다.
음식은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하지만,
음식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해 본 사람은 적을 것이다.
먹는 다는 건 너무나 당연한 일이기 때문에
의문을 가지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 음식에 인문학적 상상력을 더한다면 어떨까?
음식에 대한 추억과 역사를 말한다는 것은
곧 개인과 집단의 음식에 대한
현재적 욕망을 말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음식은 문화이다. 한 집단의 기호
음식에 그 집단 구성원의 정체성이 담겨 있다면,
우리가 자주 먹는 떡볶이, 삼겹살,
치킨에도 정체성이라는게 있을까?
인간 집단이 어떤 음식을 맛있다고 생각할 것인지
판단하는데 영향을 주는 요소
중 하나는 ‘집단의 구성원에게 넉넉하게 주어질 수
있는 음식인가'하는 것이다.
인간은 그 소속 집단에게 많이
주어진 음식을 맛있다고 생각하게 되어 있다.
‘많이 주어진'이라는 조건은 그 집단이 처한
자연과 사회・경제적 여건 등에 의해 결정된다.
예를 들어 한국인은 오래도록 빵이 아니라
밥을 맛있다고 생각해왔다.
한국인이 선천적으로 밥을 맛있다고 생각하게 태어난 것이
아님에도 말이다.
한반도의 자연은 밀농사
보다 벼농사에 유리하고,
국내산 쌀을 사 먹을 만큼 경제적 여유도 있다.
그러니 한반도에서는 밥을 먹기에 적절하니
밥이 맛있는 것이다.
어떤 나라에서는 주식이 빵인 것을 생각해보면
흥미로운 점이다.
일제강점기에 쇠고기
음식이 대중음식으로 크게 발달했던 것에 비해
돼지고기 식당은 드물었다.
그리고 1970년대 드디어 돼지의 시대가 열렸다.
돼지사육 규모가 급격하게 확대된 것은 값싼 사료 덕이 컸다.
그 이전까지 농가에서는 돼지를 더 기르고 싶어도
사료를 마련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다.
그러나 값싼 수입
곡물이 이를 해결해주면서
전문적인 돼지 사육 농가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돼지고기 음식 중 왜 하필이면 삼겹살, 돼지갈비, 순대, 족발, 돼지국밥 등이
한국의 대표적인 돼지고기
음식으로 자리를 잡게 되었을까?
“한 지역에서 가장 쉽게
또 싸게 구할 수 있는 음식이 그 지역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이 된다”는 말이 있다.
한국인이 자주 찾는 삼겹살, 돼지갈비, 순대, 족발,
돼지국밥 등의 음식이 여기에 해당한다.
1970년대 돼지고기가 대량 수출 되면서
수입국들은 등심,
안심 등 비계가 없는 부위를 원했고,
삼겹살은 국내 소비로 돌아갔다.
이제 삼겹살은 한국인의 소울푸드라는 이름을 갖고
외국에서 삼겹살을 수입해 올 만큼 삼겹살 공화국이 되었다.
음식은 정치에서 자주 활용되곤 한다.
한국 정치판에 가장 많이오르내린 음식을
들라 하면, 칼국수 만한 것이 없다.
특정 음식은 시대적 필요에 의해
정치적 그 무엇이 되기도 한다.
1969년 박정희 정부는 혼분식
장려 정책을 적극적으로 펼쳤다.
그리고 박정희가 내민 혼분식 대표 음식이 칼국수였다.
미국에서 들여온 값싼 농산물로 조리한 음식이면서 칼질을 하고
그런대로 ‘요리'처럼 보이는 칼국수가 혼분식의
대표가 된 것이다.
1970년대 칼국수는 여염집
여자라면 마땅히 하여야 하는
전통음식으로 완전히 자리 잡게 되었다.
당시 혼기를 앞두었거나
신혼에 있는 처자에게 “어떤 음식을 잘하세요?”
하고 물으면 수줍게 “칼국수”라고 대답하곤 했다.
그러나 더 이상 집에서
칼국수를 만들어 먹는 일은 거의 없다.
칼국수는 외식아이템일 뿐이다.
외식시장에서의 칼국수는 크게 두 종류로 존재한다. 고
급한 전통의 칼국수와 저렴한 서민의
칼국수. 가격차이만큼 재료의 차이가 크다.
칼국수는 값싼 서민 음식이기도 하고
고급한 상류층의 음식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정치인은 칼국수를 먹으며 친서민적인 이미지를 만들기도 하고
대중에게 신분이 다른 사람인
듯 보이려고도 한다.
칼국수는 한국 정치인의 이중성이 깊이 투영된
음식이라 할 수 있다.
음식에 대한 날카로운 통찰과 질문을 던지고 있는 책의 저자
황교익은 맛 칼럼니스트로 30년
가까이 살아오면서 스스로 질문을 던지며
“나는 왜 이 음식을 맛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는가.”를 되새기면서
본능
너머에 존재하는 음식 기호에 대한 탐구를 계속해왔다.
이것은 한국인으로 살면서
한국사회가 그를 움직이게 하고
제어하는 것들에 대한 관찰이었으며, 사색이었다.
“나의 목소리가 향하는 궁극적인 지점은 대중이 아니다.
대중의 귀에 크게 들릴 뿐이다.
한국인이 먹는 음식의 질과 양을
결정하는 자본과 정치권력, 언론이 내 쓴소리의 과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