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작원 초대소, 첫 번째-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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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원 초대소, 첫 번째
나는 정지도원이 사준 고급스러운 옷과 각종 필수품을 들고 집에 왔다. 동생들은 트렁크를 열어보더니,
“야아! 역시 다르긴 다르구만.” 하고 탄성을 질렀다.
어린 범수는 나를 마냥 부러워했다.
“큰 누나는 좋겠다.” “현희가 어디 먼 외국으로 출장가는 것 같구나.”
아버지도 분위기를 부드럽게 하려고 아이들과 맞장구를 쳤다. 이런 말들을 들으니 나도 우쭐해지는 기분으로 별 섭섭함을 느낄 여유가 없었다. 점심 때는 모처럼 가족이 한자리에 앉아 준비한 음식과 떡을 먹었다. 어머니는 식사도 못하시고 여전히
“다시 돌아올 수 있겠지.” 하는 말을 몇 번이고 되풀이하며 자위하듯 말했다.
심지어 나와 둘만 있을 때는 심청이를 인당수에 보내는 심정이라고까지 표현하면서 눈물을 보였다. 나는 솔직히 말해 어머니가 섭섭해 하는 것에 십분의 일도 그 심정을 리해하지 못했다. 그 당시 나는 너무 철이 없었다.
정 지도원이 돌아오겠다는 3시가 가까워 오자 초조해졌다. 가족들도 말수가 적어졌고 내 표정만 살폈다. 정 지도원은 우리 집에 들어서자 침체되여 있는 집안 분위기를 눈치챘는지,
“이제 당에서 딸의 장래에 대하여 모든 걸 책임지고 보장하는 겁니다. 결혼까지도 당에서 시켜줍니다. 완전히 당에 맡기십시오.” 하고 위로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지도원 앞에서 ‘아주 잘된 일' 이라며 ‘우리 집안의 최대 영광이며 당의 배려에 감사한다' 고 말했다. 나는 정 지도원을 따라 아빠트를 나섰다. 아빠트 마당에 세워 놓은 차에 올라 차창 밖을 내다보니 전송 나온 어머니와 현옥이는 눈물을 흘리며 손을 흔들었고 아버지는 걱정스러운 표정을 짓고 서 있었다. 현수와 범수는,
“큰 누나 잘가!” 하고 소리를 질렀다.
나도 그 순간은 코끝이 찡해 왔다. 아직도 내 귀에는 그때 현수와 범수가 외치던 그 소리가 메아리쳐 울린다.
자동차는 하신동 외교부 아빠트를 나와 시내를 달렸다. 나는 뒷좌석에 앉아 차창으로 보이는 거리 풍경을 내다보았다. 승용차 뒷좌석에 앉아 바라보는 거리 풍경은 뻐스를 타고 가면서 바라보는 거리 풍경과 완전히 다르게 보였다.
거리를 바쁘게 걷고 있는 인민들의 피곤한 모습은 나를 더욱 느긋한 행복감에 젖게 했다. 차가 설 때마다 오가는 사람들이 차 안을 살피다가 앳돼 보이는 녀자가 앉아 있는 모습을 보고 부러운 시선을 던질 때는 짜릿한 쾌감 같은 것이 느껴졌다. 간사스럽게도 가족들과 리별하던 섭섭한 마음은 깨끗이 가셨다.
차는 모란봉을 옆으로 두고 달리다가 천리마 동상에서 오른쪽으로 꺾어 김일성 광장, 평양역, 천리마거리를 돌아서 락원거리, 비파거리를 지나 교도대 훈련 때 눈에 익은 룡성거리로 나왔다. 이곳부터는 한적한 도로이기 때문에 속력을 내기 시작했다.
평양 외곽으로 접어들면서 간간이 붉은 넥타이를 맨 아이들이 차를 향해 소년단 경례를 붙였다. 긴 터널을 지나자 검문소가 하나 있었으나 아무런 제지 없이 통과했다. 평성시로 넘어가는 고개길에서 좌측으로 돌아 포장이 안 된 산길로 접어들었다. 산길 초입에 있는 초소에서 군인 한 사람이 뛰여나오며 부동자세로 절도 있게 경례를 했다.
초소 뒤편으로는 메추리를 양육하는 메추리 공장이 있었다. 호젓한 산길을 느린 속도로 달리는 동안 정 지도원은,
“이런데 와 봤어?” 밤에는 범이 나오는 곳이야“ 하고 겁을 주었다.
나레이션 : 대남공작원 김현희의 고백, 랑독에 박수현이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