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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김영하의 ‘책 읽는 시간’ 팟캐스트 (Reading Time podcast), Episode 28 - 박완서, “그리움을 위하여” - Part 2

Episode 28 - 박완서, “그리움을 위하여” - Part 2

마침 나도 딸애가 뒤늦게 학위르 한답시고 겨우 젖 떨어진 어린 것을 할미한테 전적으로 갖다 맞겼을 때라 어디 소개해주고 말 것도 없이 내 사정이 급했다. 그 후 나는 이게 웬 떡이냐 싶은 호강을 한지가 어언 십여년에 이른다.

시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식모라는 직업도 사라진 후, 나는 파출부 따라 식성까지 바뀌는 생활을 해왔다. 나는 내가 살림을 할 줄도 모르고 취미도 없기 때문에 누굴 가르칠 줄도 모른다. 정 음식을 맛없게 하면 저 사람은 음식은 못해도 청소하나는 잘하지, 또는 다림질 하나는 끝내주지..하는 식으로 좋은 면만 보려고 애썼다. 다 못해야만, 차라리 내가 하는 게 속편할 것 같아 그만두게 하고 부지런을 떨어봤뎄자 한 달이 못가 또 딴 파출부를 구해드리곤 했다. 동생 덕으로 내 딸이 무사히 학위를 하고나자 내 남편이 병들어 입퇴원을 되풀이 하게됬다. 동생은 한약도 잘 달이고 또 잘 쒔다. 남편이 병석에 있는 동안 동생은 나에게 내 자식들 보다 더 의지가 되었다. 환자의 몸과 마음에 보비이 보다 더 좋은 효자는 없다. 동생을 그걸 완벽하게 해주었다. 내 남편이 투병 중인 동안 나는 동생의 남편도 병중에 있단 걸 안중에도 없이 될 수 있는 대로 일찍오게 하고 밤 늦도록 붙잡아 두려고 했다. 설사 제부 생각이 문득문득 떠올랐다 해도 수고비를 넉넉히 쳐주니까 동생도 바라는 바이지, 나를 심하게 여길 건 없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내가 과부된지 삼년 후에 동생도 과부가 되었다. 그 삼년 동안 나는 동생이 내 남편한테 해준 생각을 해서라도 제부에게 신경을 안 쓸 수가 없었다. 우선 동생을 매일 쓸 필요가 없어졌는데도 매일 오도록 했다. (not clear)보다는 정당한 보수를 보장해 주는 게 동생을 돕는 길이었다. 문병도 가보려고 했지만 동생이 한사코 싫다고 했다 . 동생의 말투로 미루어 남에게 보이고 싶지 않은 것은 환자보다도 사는 형편인 듯 했다. 이사갈 때만 해도 것은 번드르르해 보였지만 워낙 난림집인데다 세줘 먹으려고 나중에 올린 옥탑방은 더 엉터리여서 여기저기 뒤틀리고 금가서 겨울에는 수도, 화장실이 얼어 붙어 못 쓰고, 여름에는 비 까지 새서 비닐 조각으로 임시변통을 해야한다고 했다. 환자까지 있는 집 꼬락서니가 그러하니 다년간 누적된 누추가 어떠하리라는 건 집작하고도 남았다. 보이고 싶지 않아하는 동생 마음에 따르는 게 수였다. 얼어 붙는 상하수도 때문에 겨울이면 물통이나 요강까지 들고 옥외 계단을 오르내리느라 동생의 관절염은 해마다 조금씩 더 나빠지는 것 같았다. 동생은 약을 입게 달고 살았다. 관절이 부드러워지는 봄, 여름에도 약국만 바라봐도 삭신이 쑤셔서 약을 안 먹고는 못 배긴다고 했다. 나는 문병은 갔지만 내 딴엔 남보다 후한 월급 외에도 도움을 주려고 은근히 제부에게 많은 배려를 하는 편이었다. 남편의 유품 중 따듯하고 편한 옷을 죄다 보냈고 집에서 별식을 할 때 뿐 아니라 자식들이 나한테 보내는 고깃근이나 영양제도 늘 넉넉하게 나누었다. 약식이나 인절미 같은 것도 잘 먹고, 소화도 잘 시킨다고 하기에 출입만 못 할 뿐 제부는 마냥 살 줄 알았다. 물론 그걸 동생의 복이라고 생각한 건 아니다 오히려 그렇게 착하고 솜씨좋은 동생이 어쩌면 복은 그렇게 지지리도 없을까 생각할 때 마다 그게 제부탓으로 여기고 있었다.

명절을 앞두고 있어서 동생하고 준비할게 이것 저것 적지 않을 때 동생한테서 못 오겠다는 전화가 왔다. 매일 온다고는 하나, 지 볼일을 못 볼정도로 매여있는 건 아니여서 시집 대소사나 친구끼리 계모임에도 거의 안 빠지는 동생이었다. 그렇지만 사전 양해 없이 긴요할 때 빠지겠다고 한건 처음이었다. 나는 벌컥 화가났지만 환자가 아침에도 먹을 걸 안 찾는게 암만해도 이상해서 집을 비우기 싫다고 했다. (not clear)에 사는 아들 며느리는 뒀다가 뭐하느냐고 역정을 내려다가 말았는데 참길 잘 했다. 제부는 그날을 넘기지 못하고 숨을 거두었다. 옥외 계단으로 시신을 내가게 될까봐 늘 걱정하던 동생은 119를 불러 혼수상태의 병자를 병원으로 옮기고 그러고 나서 곧 임종을 맞았다고 했다. 만약 내가 성질을 부려서 동생을 남편 임종도 못 보게 했더라면 어쩔뻔 했나. 생각 날 때마나 모골이 송연해지곤 했다. 나중에 들어서 안 얘기지만 제부는 죽기 전날 밤 느닷없이 동생의 손목을 잡고 사랑한다고 말하더란다. 기분이 이상해서 누구 보고싶은 사람없냐, 아이들을 부를까 물어봤더니 아니, 아무도 안 보고 싶다고, 당신만 있으면 그만이라고, 사랑한다고 강조하더란다. 그 다음날 아침 안 깨어나길래 죽을 준비를 침착하게 할 수 있었노라고 했다.

그후에도 동생은 아무한테나 사랑한다는 제 남편의 마지막 말을 되뇌며 헤헤거렸다. 남편으로 부터 그런 임종의 말을 들은 여편네있으면 어디 나와보라는 투였다. 아무리 작은 것에 행봉해 하는 동생이라지만 저리도 속이 없을까 한심한 생각이 들었다. 동생에게 남겨진 건 더이상 퇴락할 여지도 없을 정도로 누추한 전셋방이 다였다. 그나마 전세돈을 올려달라지 않는 것만 다행이었다. 떼 봤뎄자 천만원도 안 되는 돈으로 얻을 수 있는 전셋방이 서울시내에 어디있겠느냐. 주인은 곧 재개발이 되어 헐릴집이라는 핑계로 고쳐주지도 않는 대신 돈도 더 달래지 않았다. 동생의 두 자식들도 저마다 옹색한 단칸방에서 제 자식을 둘 씩 낳아 기르면서 반듯한 독채 전셋집을 얻을 만한 돈을 마련하는 걸 목표로 열심히 일하고 있었다. 동생을 자식들이 저 살 궁리만 한다고 섭섭해하는 소리를 한번도 안 했다. 오히려 부모덕 없는 걸 원망하지 않고 씩씩하게 하는 걸 고마워 했다.

관절 때문에 겨울나기를 유난히 힘들어 하던 동생이 지난 여름에는 더위를 못 참아하면서 그 좋던 얼굴도 점점 못 쓰게 돼가는게 눈에 띄었다. 남편의 상 중에도 화색을 잃지 않고 무슨 잔칫날 처럼 조문객을 챙겨 먹이려고 잠시도 엉덩이를 붙이지 않던 동생이었다. 어디 아픈게 아니냐고 물어도 괜찮다는 대답이 기운이 하나도 없었다. 혈색없는 얼굴에 푸석한 부기까지 나타났다. 안 되겠다 싶어 심각하게 따져 물었더니 옥탑방의 더위는 밤에도 화덕 속 같다는 것이었다. 선풍기를 두대나 틀어놓고 자는데도 환장하게 더워서 러닝셔츠를 물에 담갔다가 대강 짜서 잆고 자면 그게 마르는 동안은 조금 견딜만해서 잠을 청할 수가 있는데 아침에 일어나면 머리가 무겁고 기운이 하나도 없다고 했다. 젖은 옷을 입고 잔다는 소리는 충격적이었다. 나는 삼복더위가 가실 때 까지만이라도 우리 집에 같이 있자는 말이 입 밖까지 나오려는 걸 꾹 눌러 참았다. 우리 집은 단열과 통풍이 잘 돼있어 열대야 현상을 거의 못 느끼고 여름을 날 수가 있었다. 그러나 동생의 끝없는 수다를 참아낼 생각을 하면 절로 고개가 저어졌다.

평소에도 동생을 우리집에 들어서자 마자 거의 한시간은 수다를 떨어야 일을 시작했다.

나하고 관계되는 사람 얘기하면 들을 만도 하겠는데 거의가 나는 한번도 본적이 없는 시집의 친척들 얘기 아니면 친목계원들 얘기였다. 동생은 시집 쪽이 번족한데 이젠 대가 갈려 젊은이들 세상이 되니까 서럽게 된 노인도 많고 재산 관리를 잘못해 억울하게 된 노인이나 병든 노인도 여럿 생겨나는 것 같았다. 그러나 늙은 이들 모인데서는 어디서나 들을 수 있는 그저그런 구질구질하고 시시콜콜한 얘기였다. 아마도 우리집에 오는 횟수가 줄어들면서 친척간의 왕래가 정상적으로 회복됐기 때문일 터였다. 그러나 동생이 그런 얘기를 할 때 저렇게도 신이나서 한 얘기를 또하고 또하면서도 지칠 줄 모르는 것은 제 잇속만 챙기고 제 마누라 말만 받들어 보실 줄 아는 요새 젊은 것들 중에서는 그래도 내 새끼들이 그중 효자더라라고 말하고 싶은 욕구 때문이라는 걸 나는 알고 있었다. 아닌게 아니라 동생의 큰 아들은 소원대로 방이 세개 있는 독채 전세로 이사를 한지 얼마 안 되었다. 나는 그때 으레 동생이 그 끔찍한 옥탑방을 면할 줄 알았다. 그러나 말이 방이 세개지 하나는 창고로 쓰기도 작고 중학교 갈 날이 머지 않은 손자들 두 놈은 한 놈이 들어서도 집안이 꽉 찰 만큼 성장했다. 동생은 거기 들어가 같이 살 생각을 꿈에도 안 해본 것 같았지만 젖은 옷을 입고 잔다는 소리를 듣고 부터는 여름동안 만이라도 와있으라는 소리를 안 하는 아들 내외가 괘씸하기 짝이 없었다. 우리집에 와 있으라는 얘기를 꼴각 삼키고 만 것은 수다 때문이라기 보다는 누가 더 동생에게 가까울까 하는 책임감의 문제였다. 와 있으라고는 못 했지만 며칠 바캉스를 다녀오겠다는 말에는 반색을 하며 그러라고 했다.

바캉스라는 말이 동생 입에서 나오니까 그렇게 신선하게 들릴 수가 없었다. 남해에 작은 섬에서 민박집을 하는 친구가 있는데 그 섬은 주위가 청정해역일 뿐 아니라 여름에 서늘하고 겨울에도 영하로 내려가는 일이 없다면서 한번 꼭 놀러오란다는 것이었다. 넉넉 잡아 일주일간 있다 올줄 안 동생은 열흘이 지나도 감감 무소식이었다. 민박집이 동생을 부른 것은 서늘한 여름을 나려는게 아니라 동생을 부려먹고 싶어서 일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번 의심하는 마음이 생기자 점점 확신으로 변했다. 그렇게 좋은 섬이라면 올 여름 같은 혹서에 오죽 피서객이 많이 몰리겠는가. 민박집이 호황을 맞아 일손이 딸릴게 뻔했다. 그러잖아도 공밥을 얻어먹을 동생이 아니었다. 오죽 바지런을 떨며 구석구석 쓸고 닦고 옆옆하게 투숙객들 시중을 들것인가 보지 않아도 눈에 선했다. 그 속없는 것이 본업을 까맣게 잊고 팁 몇 푼 받아 쓰는 재미에 팔려 배알이라도 빼줄 듯이 헤헤거리고 있을 생각을 하면 울화통이 치밀었다. 파출부란 제도가 있기전 옛날, 요새 너도나도 아무리 가난뱅이라도 밥만 안 굶으면 다 자가용 부리듯이, 도시에선 집집마다 식모를 두고 살던 때가 있었다. 공단이 생기면서 그 흔한 식모가 귀해지기 시작하자 남의 식모를 빼돌리다가 탄로가 나서 친하던 이웃끼리 쌈박질이 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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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isode 28 - 박완서, “그리움을 위하여” - Part 2 Episode 28 - Wanseo Park, "Aus Sehnsucht" - Teil 2 Episode 28 - Wanseo Park, "For Longing" - Part 2

마침 나도 딸애가 뒤늦게 학위르 한답시고 겨우 젖 떨어진 어린 것을 할미한테 전적으로 갖다 맞겼을 때라 어디 소개해주고 말 것도 없이 내 사정이 급했다. ||娘|||するつもりで||乳||幼い||おばあさんに|||預けていた|時|||||||事情|急いでいた At last, when my daughter was belatedly belated about her degree, and the young girl who had barely gotten wet was hit by her grandmother completely, my situation was urgent without telling me anywhere. ちょうど私も娘が遅れながら学位を取ると言って、やっと乳離れした子供を祖母に全て任せたときなので、どこかに紹介することもなく私の事情が急を要した。 그 후 나는 이게 웬 떡이냐 싶은 호강을 한지가 어언 십여년에 이른다. |||||||贅沢||およそ|| After that, it's been over ten years since I've been asking why this is rice cake. その後、私はこれが何のご馳走だろうと思う贅沢をもう十数年も味わってきた。

시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식모라는 직업도 사라진 후, 나는 파출부 따라 식성까지 바뀌는 생활을 해왔다. ||食母という|||||||食性まで||| After my mother-in-law died and my job as a mother-in-law disappeared, I lived a life of changing dietary habits with the policewoman. 義母が亡くなり、家政婦という職業も消えた後、私は派遣の仕事に従事し、食生活までも変わる生活をしてきた。 나는 내가 살림을 할 줄도 모르고 취미도 없기 때문에 누굴 가르칠 줄도 모른다. ||||||趣味も|||||| I don't know how to teach anyone because I don't know how to live and have no hobbies. 私は家事ができないし趣味もないので、誰かを教えることもできません。 정 음식을 맛없게 하면 저 사람은 음식은 못해도 청소하나는 잘하지, 또는 다림질 하나는 끝내주지..하는 식으로 좋은 면만 보려고 애썼다. |||||||||||||||||面だけ|| If I made the food taste bad, he tried to see only the good side by saying that even if he couldn't do the food, he was good at cleaning, or ironing, awesome. もし料理をまずく作るなら、あの人は料理ができなくても掃除は上手いとか、アイロンがけは素晴らしいとか、そういう良い面だけを見ようと頑張った。 다 못해야만, 차라리 내가 하는 게 속편할 것 같아 그만두게 하고 부지런을 떨어봤뎄자 한 달이 못가 또 딴 파출부를 구해드리곤 했다. |できない|||||||ようだ||||落としたら|||||||| If I couldn't do it all, I would rather have a sequel to do it, so I quit, and after a month of diligence, I used to rescue another policeman. 全てができないなら、むしろ自分がやった方が気が楽だと思ったので辞めさせて、一生懸命働いてみたが、一ヶ月も経たないうちにまた別の家政婦を探してあげていた。 동생 덕으로 내 딸이 무사히 학위를 하고나자 내 남편이 병들어 입퇴원을 되풀이 하게됬다. ||||||||||入退院|| Thanks to my younger brother, after my daughter completed her degree safely, my husband became ill and repeatedly hospitalized and discharged. 妹のおかげで私の娘が無事に学位を取得した後、私の夫は病気になり入退院を繰り返すことになった。 동생은 한약도 잘 달이고 또 잘 쒔다. ||||||煎じる My younger brother also decocted medicinal herbs well and used it well. 妹は漢方も上手に煎じて、また上手に作る。 남편이 병석에 있는 동안 동생은 나에게 내 자식들 보다 더 의지가 되었다. ||||||||||頼り| 夫が病床にある間、妹は私にとって自分の子供たち以上に頼りになる存在となった。 환자의 몸과 마음에 보비이 보다 더 좋은 효자는 없다. |||保費||||| 患者の体と心において、ボビイよりも良い効者はいない。 동생을 그걸 완벽하게 해주었다. 弟をそれを完璧にやってあげた。 내 남편이 투병 중인 동안 나는 동생의 남편도 병중에 있단 걸 안중에도 없이 될 수 있는 대로 일찍오게 하고 밤 늦도록 붙잡아 두려고 했다. |||||||||||考慮にも|||||||||||| 私の夫が病気の間、私は弟の夫も病気であることを意識せず、できるだけ早く来るようにし、夜遅くまで引き留めようとしていた。 설사 제부 생각이 문득문득 떠올랐다 해도 수고비를 넉넉히 쳐주니까 동생도 바라는 바이지, 나를 심하게 여길 건 없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手間賃を||||||||軽んじる|||| たとえ義兄のことをふと思い出しても、手当をたっぷりもらえるので、妹も望むはずで、私をひどく思うことはないと思っただろう。

내가 과부된지 삼년 후에 동생도 과부가 되었다. |未亡人になって||||| Three years after I became a widow, my younger brother also became a widow. 私が未亡人になってから三年後、妹も未亡人になった。 그 삼년 동안 나는 동생이 내 남편한테 해준 생각을 해서라도 제부에게 신경을 안 쓸 수가 없었다. |||||||||してでも|||||| その三年間、私は妹が私の夫にしてくれたことを思い出しながら、義兄に気を使わざるを得なかった。 우선 동생을 매일 쓸 필요가 없어졌는데도 매일 오도록 했다. |||||||来るように| First of all, I had to come every day even though I no longer need to use my brother every day. まず、弟を毎日使う必要がなくなったのに、毎日来るようにした。 (not clear)보다는 정당한 보수를 보장해 주는 게 동생을 돕는 길이었다. It was the way to help my younger brother to guarantee fair compensation rather than (not clear). (不明)よりも正当な報酬を保証することが弟を助ける道だった。 문병도 가보려고 했지만 동생이 한사코 싫다고 했다 . |||||嫌だと| I tried to go visit, but my younger brother said that he hated it. 見舞いにも行こうと思ったが、弟がどうしても嫌だと言った。 동생의 말투로 미루어 남에게 보이고 싶지 않은 것은 환자보다도 사는 형편인 듯 했다. ||見ると||||||||状況|| What I didn't want to see from my brother's words seemed to be living more than a patient. 弟の話し方から推測するに、人に見せたくないものは患者よりも生活の状況のようだった。 이사갈 때만 해도 것은 번드르르해 보였지만 워낙 난림집인데다 세줘 먹으려고 나중에 올린 옥탑방은 더 엉터리여서 여기저기 뒤틀리고 금가서 겨울에는 수도, 화장실이 얼어 붙어 못 쓰고, 여름에는 비 까지 새서 비닐 조각으로 임시변통을 해야한다고 했다. ||||||||セジュ||||||||||||||凍り|||||||||応急処置|| When I moved, it looked sloppy, but the rooftop room that I uploaded later to rent it out for rent is more crappy, and it's twisted and cracked. I said. 引っ越すときはそれがぴかぴかに見えたが、元々雑な家で、後から上に作られた屋上部屋はさらにひどくて、あちこち歪んで亀裂が入っていて、冬には水道とトイレが凍って使えず、夏には雨が漏ってビニールの塊で応急処置をしなければならないと言っていた。 환자까지 있는 집 꼬락서니가 그러하니 다년간 누적된 누추가 어떠하리라는 건 집작하고도 남았다. |||||多年간|||||| 患者までいる家の様子がこのようであれば、長年の蓄積された惨めさはどれほどのものになるかは想像に難くない。 보이고 싶지 않아하는 동생 마음에 따르는 게 수였다. ||しない||||| 見せたくない妹の心に従うことがすいだった。 얼어 붙는 상하수도 때문에 겨울이면 물통이나 요강까지 들고 옥외 계단을 오르내리느라 동생의 관절염은 해마다 조금씩 더 나빠지는 것 같았다. Because of the freezing water and sewage system, in winter, my brother's arthritis seemed to get worse every year as he went up and down the outdoor stairs with a bucket or a toilet. 凍りつく上下水道のせいで冬になると水缶や汲み取りバケツを持って屋外の階段を上り下りするため、妹の関節炎は毎年少しずつ悪化しているようだった。 동생은 약을 입게 달고 살았다. ||着け|| My younger brother lived with medicine. 妹は薬を常に持ち歩いていた。 관절이 부드러워지는 봄, 여름에도 약국만 바라봐도 삭신이 쑤셔서 약을 안 먹고는 못 배긴다고 했다. ||||||||||||耐えられない| Even in the spring and summer, when the joints become softer, even looking at the pharmacy, he was sore sore that he couldn't drink without taking medicine. 関節が柔らかくなる春、夏にも薬局だけを見ていると、体中が痛くて薬を飲まずにはいられないと言った。 나는 문병은 갔지만 내 딴엔 남보다 후한 월급 외에도 도움을 주려고 은근히 제부에게 많은 배려를 하는 편이었다. ||||私の考えでは|||||||||||| I went to visit the hospital, but in addition to the salary that is more generous than others, I secretly gave a lot of consideration to my wife to help. 私は病気を見舞いに行ったが、自分としては他の人より多めの給料に加えて、さりげなく義兄に多くの配慮をしていた。 남편의 유품 중 따듯하고 편한 옷을 죄다 보냈고 집에서 별식을 할 때 뿐 아니라 자식들이 나한테 보내는 고깃근이나 영양제도 늘 넉넉하게 나누었다. |遺品|||||||||||||||||||| I sent all of my husband's keepsakes in warm and comfortable clothes, and I always shared generously with the meat and nutrition that my children send to me as well as when I had a meal at home. 夫の遺品の中から暖かくて楽な服を全部送り、家で特別な食事をする時だけでなく、子どもたちが私に送ってくれる肉の根や栄養剤もいつも十分に分けていた。 약식이나 인절미 같은 것도 잘 먹고, 소화도 잘 시킨다고 하기에 출입만 못 할 뿐 제부는 마냥 살 줄 알았다. ||||||||||出入りだけ|||||||| お餅やインジョルミなどもよく食べ、消化も良いと言われているので、出入りできないだけで、義兄はずっと肥えるだろうと思った。 물론 그걸 동생의 복이라고 생각한 건 아니다 오히려 그렇게 착하고 솜씨좋은 동생이 어쩌면 복은 그렇게 지지리도 없을까 생각할 때 마다 그게 제부탓으로 여기고 있었다. もちろんそれが弟の福だとは思っていなかった。むしろそんなに優しくて料理が上手な弟が、どうしてそんなに運がないのかと思うたびに、それは義兄のせいにしていた。

명절을 앞두고 있어서 동생하고 준비할게 이것 저것 적지 않을 때 동생한테서 못 오겠다는 전화가 왔다. ||||||||||弟から|||| 節句を前にして、弟と準備することがこれこれと多くなっていた時、弟から来られないという電話がかかってきた。 매일 온다고는 하나, 지 볼일을 못 볼정도로 매여있는 건 아니여서 시집 대소사나 친구끼리 계모임에도 거의 안 빠지는 동생이었다. ||||||見ることができるほど||||||||||| 毎日来るとは言っても、自分の用事が見えなくなるほど忙しいわけではなく、結婚式の大事な出来事や友達との会合にもほとんど欠席しない妹だった。 그렇지만 사전 양해 없이 긴요할 때 빠지겠다고 한건 처음이었다. しかし、事前の了解なしに急に欠席するとは初めてだった。 나는 벌컥 화가났지만 환자가 아침에도 먹을 걸 안 찾는게 암만해도 이상해서 집을 비우기 싫다고 했다. |||患者が||||||||||| 私は突然怒りがこみ上げてきたが、患者が朝から食べ物を探さないのはどう考えてもおかしかったので、家を空けたくないと言った。 (not clear)에 사는 아들 며느리는 뒀다가 뭐하느냐고 역정을 내려다가 말았는데 참길 잘 했다. |||||||何をしているのか|||||| My son's daughter-in-law, who lives in (not clear), kept asking what he was doing, but he was patient. (はっきりしない)ところに住んでいる息子の嫁はどうするのかと怒りをこらえかけたが、我慢してよかった。 제부는 그날을 넘기지 못하고 숨을 거두었다. 弟はその日を越えられず、息を引き取った。 옥외 계단으로 시신을 내가게 될까봐 늘 걱정하던 동생은 119를 불러 혼수상태의 병자를 병원으로 옮기고 그러고 나서 곧 임종을 맞았다고 했다. 屋外||||||心配していた||||昏睡状態の||||||||| My younger brother, who was always worried that he would drop his body on the outdoor stairs, called 119 to move the sick man in a coma to the hospital, and then said he was dying soon after. 外階段で遺体を運ぶことになったらどうしようと常に心配していた弟は、119番を呼んで意識不明の患者を病院に運び、その後すぐに亡くなったと言った。 만약 내가 성질을 부려서 동생을 남편 임종도 못 보게 했더라면 어쩔뻔 했나. ||性質を||||||||どうなっていたんだろう| もし私が怒りを爆発させて弟が夫の最期を見れなかったとしたら、どうなっていたのだろうか。 생각 날 때마나 모골이 송연해지곤 했다. ||||霊魂| Whenever I thought of it, Mogol was often screaming. 思い出すたびに心が痛むことがあった。 나중에 들어서 안 얘기지만 제부는 죽기 전날 밤 느닷없이 동생의 손목을 잡고 사랑한다고 말하더란다. |聞いて||||||||||||言ったそうだ 後から聞いた話だけど、義兄は亡くなる前の晩、突然弟の手首を掴み、愛していると言ったそうだ。 기분이 이상해서 누구 보고싶은 사람없냐, 아이들을 부를까 물어봤더니 아니, 아무도 안 보고 싶다고, 당신만 있으면 그만이라고, 사랑한다고 강조하더란다. ||||人はいないのか||||||||||||| 気分が悪くて誰か会いたい人はいないか、子供たちを呼ぼうかと聞いたら、いや、誰も会いたくない、あなたさえいればそれでいい、愛していると強調したそうだ。 그 다음날 아침 안 깨어나길래 죽을 준비를 침착하게 할 수 있었노라고 했다. ||||||||||だった| その翌朝、起きなかったので、自分は死ぬ準備を冷静にできると思ったと言った。

그후에도 동생은 아무한테나 사랑한다는 제 남편의 마지막 말을 되뇌며 헤헤거렸다. |||||||||へへ笑った その後も妹は誰にでも愛しているという私の夫の最後の言葉を繰り返しながらヘヘと笑っていた。 남편으로 부터 그런 임종의 말을 들은 여편네있으면 어디 나와보라는 투였다. 夫として||||||||| 旦那からそんな最期の言葉を聞いた妻がいるなら、どこに出てこいという感じだった。 아무리 작은 것에 행봉해 하는 동생이라지만 저리도 속이 없을까 한심한 생각이 들었다. |||行動する||||心 (こころ)|||| Even though he is a younger brother who goes to the smallest things, I wondered if he would be deceived. いくら小さなことに執着する弟だとしても、あれほど中身がないのかと情けない気持ちになった。 동생에게 남겨진 건 더이상 퇴락할 여지도 없을 정도로 누추한 전셋방이 다였다. |||||||||賃貸アパート|だった All that was left to my younger brother was a shabby front room that no longer had room for decline. 弟に残されたのは、これ以上衰退する余地もないくらいみすぼらしい賃貸の部屋だけだった。 그나마 전세돈을 올려달라지 않는 것만 다행이었다. |家賃保証金|||| I was fortunate that I didn't ask for the money to be raised. それでも賃貸料金を上げてくれないだけでも幸いだった。 떼 봤뎄자 천만원도 안 되는 돈으로 얻을 수 있는 전셋방이 서울시내에 어디있겠느냐. |||||||||||どこにあるだろうか 払ってみると、1000万ウォンにも満たないお金で手に入る賃貸部屋がソウル市内にどこにあるというのか。 주인은 곧 재개발이 되어 헐릴집이라는 핑계로 고쳐주지도 않는 대신 돈도 더 달래지 않았다. ||||壊れる家という|||||||| The owner was soon redeveloped and did not fix the house on the excuse of destroying it. 家主はすぐに再開発されて取り壊される家だという理由で修理もしてくれず、その上もっとお金を要求もしなかった。 동생의 두 자식들도 저마다 옹색한 단칸방에서 제 자식을 둘 씩 낳아 기르면서 반듯한 독채 전셋집을 얻을 만한 돈을 마련하는 걸 목표로 열심히 일하고 있었다. |||||ワンルームで||||||||||||| 마련する||||| 弟の二人の子供たちも、それぞれ狭いワンルームで自分の子供を二人産み育てながら、立派な独立した賃貸住宅を得るためのお金を準備することを目指して一生懸命働いていた。 동생을 자식들이 저 살 궁리만 한다고 섭섭해하는 소리를 한번도 안 했다. ||||考え|||声|一度も|| I never made a sound of regretting my younger brother that his children were thinking about how much to live. 弟は子供たちが自分の生活を考えることに不満を言ったことは一度もなかった。 오히려 부모덕 없는 걸 원망하지 않고 씩씩하게 하는 걸 고마워 했다. ||||恨まない|||||| むしろ親の助けがないことを恨まずに、元気にやっていることを感謝していた。

관절 때문에 겨울나기를 유난히 힘들어 하던 동생이 지난 여름에는 더위를 못 참아하면서 그 좋던 얼굴도 점점 못 쓰게 돼가는게 눈에 띄었다. 関節||冬を越すこと||||||||||||||||なっている|| It was noticeable that my younger brother, who was having an exceptionally hard time getting out of winter because of his joints, was unable to tolerate the heat last summer and became increasingly unable to use his good face. 関節のせいで冬を特に辛く過ごしていた妹が、昨夏には暑さに耐えられず、あの良い顔も次第に使い物にならなくなっていくのが目に見えた。 남편의 상 중에도 화색을 잃지 않고 무슨 잔칫날 처럼 조문객을 챙겨 먹이려고 잠시도 엉덩이를 붙이지 않던 동생이었다. |喪||||||お祝いの日||||||お尻を||| He was the younger brother who did not lose his color even during his husband's table and did not attach his ass for a while to take care of the condolences and feed them like a feast day. 夫の忌中でも笑顔を失わず、まるで宴会の日のように弔問客の世話をして食べさせようとして、一瞬でも尻を地面につけなかった妹だった。 어디 아픈게 아니냐고 물어도 괜찮다는 대답이 기운이 하나도 없었다. |||聞いても||||| There was no energy to answer that it was okay to ask where I was sick. どこか痛いのかと尋ねても、大丈夫だという返事にはまったく元気がなかった。 혈색없는 얼굴에 푸석한 부기까지 나타났다. |||腫れまで| He even appeared on his uncolored face and puffy swelling. 血色のない顔に腫れたむくみまで現れた。 안 되겠다 싶어 심각하게 따져 물었더니 옥탑방의 더위는 밤에도 화덕 속 같다는 것이었다. ||||考えて|||暑さは||||| だめだと思って真剣に問い詰めたら、屋上部屋の暑さは夜も炉の中のようだということだった。 선풍기를 두대나 틀어놓고 자는데도 환장하게 더워서 러닝셔츠를 물에 담갔다가 대강 짜서 잆고 자면 그게 마르는 동안은 조금 견딜만해서 잠을 청할 수가 있는데 아침에 일어나면 머리가 무겁고 기운이 하나도 없다고 했다. |||寝る|||||浸けて|大まかに||||||||耐えられる|||||||||||| Even though I sleep with two fans on, it is extremely hot, so I dip my running shirt in water and then squeeze it and measure it.I can sleep while it dries, so I can sleep. 扇風機を二台も回しながら寝ていても、耐え難い暑さでランニングシャツを水に浸して軽く絞って着て寝ると、それが乾く間だけは少し耐えられて眠ることができるが、朝起きると頭が重くて元気が全くないと言っていた。 젖은 옷을 입고 잔다는 소리는 충격적이었다. ||||音は|衝撃的だった The sound of sleeping in wet clothes was shocking. 濡れた服を着て寝るというのは衝撃的だった。 나는 삼복더위가 가실 때 까지만이라도 우리 집에 같이 있자는 말이 입 밖까지 나오려는 걸 꾹 눌러 참았다. |||||||||||口||||| I pressed and held back until the Sambok heat was gone, saying to stay with us at home. 私は猛暑が和らぐまでだけでも家に一緒にいようという言葉が口から出そうになったのを堪えた。 우리 집은 단열과 통풍이 잘 돼있어 열대야 현상을 거의 못 느끼고 여름을 날 수가 있었다. ||断熱と|||||現象||||||| 我が家は断熱と通風がしっかりしているので熱帯夜の現象をほとんど感じずに夏を過ごすことができた。 그러나 동생의 끝없는 수다를 참아낼 생각을 하면 절로 고개가 저어졌다. ||||耐え抜く||||| しかし、妹の終わりのないおしゃべりを我慢しようと思うと、自然に頭が横に振られた。

평소에도 동생을 우리집에 들어서자 마자 거의 한시간은 수다를 떨어야 일을 시작했다. As soon as my younger brother entered my house, I had to chat for almost an hour before starting work. 普段でも妹が私の家に入るなり、ほぼ1時間はおしゃべりをしなければ仕事を始めなかった。

나하고 관계되는 사람 얘기하면 들을 만도 하겠는데 거의가 나는 한번도 본적이 없는 시집의 친척들 얘기 아니면 친목계원들 얘기였다. |関係する|||||||||||||||親睦会のメンバー| 私に関係のある人の話なら聞く価値があるだろうが、ほとんどが私は一度も見たことがない義理の親戚の話か、親睦会のメンバーの話だった。 동생은 시집 쪽이 번족한데 이젠 대가 갈려 젊은이들 세상이 되니까 서럽게 된 노인도 많고 재산 관리를 잘못해 억울하게 된 노인이나 병든 노인도 여럿 생겨나는 것 같았다. |お嫁さん|行き先||||||||悲しげに|||||||無念に|||||||| 弟は嫁に行く方が繁盛しているが、今は若者たちの世界となると、悲しい思いをする老人も多く、財産管理を誤って困っている老人や病気の老人も多くなっているようだった。 그러나 늙은 이들 모인데서는 어디서나 들을 수 있는 그저그런 구질구질하고 시시콜콜한 얘기였다. しかし、老人たちが集まるところでは、どこでも聞くことができるそのようなしょうもないつまらない話だった。 아마도 우리집에 오는 횟수가 줄어들면서 친척간의 왕래가 정상적으로 회복됐기 때문일 터였다. ||||||||回復した|| Probably because the number of coming to my house decreased, and the traffic between relatives recovered normally. おそらく、我が家に来る回数が減ることで、親戚間の交流が正常に回復したからだろう。 그러나 동생이 그런 얘기를 할 때 저렇게도 신이나서 한 얘기를 또하고 또하면서도 지칠 줄 모르는 것은 제 잇속만 챙기고 제 마누라 말만 받들어 보실 줄 아는 요새 젊은 것들 중에서는 그래도 내 새끼들이 그중 효자더라라고 말하고 싶은 욕구 때문이라는 걸 나는 알고 있었다. |||||||||||また|疲れる|||||自分の利益だけ|気にして||妻||||||||||||子供たち||効き目がある|||||||| しかし、弟がそのような話をする時、あんなに楽しそうに話を繰り返し、疲れることを知らないのは、自分だけの利益を考え、妻の言葉しか聞こうとしない最近の若者の中でも、せめて私の子供たちがその中で良い子であると言いたい欲求のためだということを私は知っていた。 아닌게 아니라 동생의 큰 아들은 소원대로 방이 세개 있는 독채 전세로 이사를 한지 얼마 안 되었다. ではない|||||願い通り|||||||||| No, my brother's eldest son just moved to a private house with three rooms as wished. 実は、弟の大きな息子は希望通り部屋が3つある独立した家に引っ越したばかりだった。 나는 그때 으레 동생이 그 끔찍한 옥탑방을 면할 줄 알았다. ||||||屋上の部屋を|逃れる||知っていた 私はその時、弟があの恐ろしい屋上部屋から逃れられると思っていた。 그러나 말이 방이 세개지 하나는 창고로 쓰기도 작고 중학교 갈 날이 머지 않은 손자들 두 놈은 한 놈이 들어서도 집안이 꽉 찰 만큼 성장했다. |||||||||||||孫たち||||||家の中が||満ちる||成長した しかし、部屋は三つあると言っても、一つは倉庫として使うには小さく、中学校に通うまでの日が近づいている孫たち二人は、一人が入るだけでも家の中がぎゅうぎゅうになるほど成長してしまった。 동생은 거기 들어가 같이 살 생각을 꿈에도 안 해본 것 같았지만 젖은 옷을 입고 잔다는 소리를 듣고 부터는 여름동안 만이라도 와있으라는 소리를 안 하는 아들 내외가 괘씸하기 짝이 없었다. ||||||||||||||||||||||||息子|||| My younger brother seemed to haven't even dreamed of going into there and living with him, but after hearing the sound of sleeping in wet clothes, my son and his son, who didn't tell me to stay there for the summer, were uncomfortable. 弟はそこに入って一緒に住むことを夢にも考えなかったようだが、濡れた服を着たまま寝るという話を聞いてからは、夏の間だけでも滞在してほしいという夫婦の言葉が嫌で仕方なかった。 우리집에 와 있으라는 얘기를 꼴각 삼키고 만 것은 수다 때문이라기 보다는 누가 더 동생에게 가까울까 하는 책임감의 문제였다. ||||||||||||||近いだろうか||| 我が家に来てほしいという話を飲み込んだのは、おしゃべりのためというよりは、誰がより弟に近いかという責任感の問題だった。 와 있으라고는 못 했지만 며칠 바캉스를 다녀오겠다는 말에는 반색을 하며 그러라고 했다. |||||バカンスを|||||| I couldn't tell him to come, but when he said he was going to go on a vacation for a few days, he said so with disapproval. 行ってはいけないとは言えなかったが、数日間バカンスに行くという言葉には喜び、そうするように言った。

바캉스라는 말이 동생 입에서 나오니까 그렇게 신선하게 들릴 수가 없었다. バカンスという||||||||| バカンスという言葉が妹の口から出ると、そんなに新鮮に聞こえることはなかった。 남해에 작은 섬에서 민박집을 하는 친구가 있는데 그 섬은 주위가 청정해역일 뿐 아니라 여름에 서늘하고 겨울에도 영하로 내려가는 일이 없다면서 한번 꼭 놀러오란다는 것이었다. |||||||||周りが|||||||||||||遊びに来るようにという| I have a friend who runs a bed and breakfast on a small island in the South Sea, and the island is not only clean, but cool in summer and never goes below freezing even in winter. 南海にある小さな島で民宿をしている友達がいて、その島は周囲が清浄海域であるだけでなく、夏に涼しく、冬でも零下に下がることがないから、ぜひ遊びに来てほしいと言っていた。 넉넉 잡아 일주일간 있다 올줄 안 동생은 열흘이 지나도 감감 무소식이었다. |||||||||まったく|無報告だった The younger brother, who wasn't supposed to be coming for a week, was feeling no news even after 10 days. 余裕を持って一週間いるつもりだった弟は十日が過ぎても音沙汰がなかった。 민박집이 동생을 부른 것은 서늘한 여름을 나려는게 아니라 동생을 부려먹고 싶어서 일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I thought that it was because the guesthouse called for his younger brother, not because he wanted to pamper his younger sister, not to spend a cool summer. 民宿が弟を呼んだのは、涼しい夏を過ごそうとしているのではなく、弟をこき使いたいからだと思った。 한번 의심하는 마음이 생기자 점점 확신으로 변했다. |||生まれた||| 一度疑いの気持ちが生まれると、次第に確信に変わった。 그렇게 좋은 섬이라면 올 여름 같은 혹서에 오죽 피서객이 많이 몰리겠는가. ||||||||||集まるだろう そんなに良い島なら、今年の夏のような猛暑に、どれだけの避暑客が押し寄せることか。 민박집이 호황을 맞아 일손이 딸릴게 뻔했다. ||||足りる| As the guest house was booming, it was obvious that I would have a hand. 民宿が好況を迎えて、手が足りなくなるのは明らかだった。 그러잖아도 공밥을 얻어먹을 동생이 아니었다. |ご飯||| Even so, he wasn't the younger brother to get the ball. そうでもなければ、飯を食べるための弟ではなかった。 오죽 바지런을 떨며 구석구석 쓸고 닦고 옆옆하게 투숙객들 시중을 들것인가 보지 않아도 눈에 선했다. |バジルンを|||||おそらく|宿泊客たち||するのだろう||||浮かんでいた どれほど忙しく隅々まで掃除し、宿泊客におもてなしをしているのか、見なくても目に浮かぶようだった。 그 속없는 것이 본업을 까맣게 잊고 팁 몇 푼 받아 쓰는 재미에 팔려 배알이라도 빼줄 듯이 헤헤거리고 있을 생각을 하면 울화통이 치밀었다. ||||||||||||||||||||怒り|立った When I thought that I was wandering as if I was going to get rid of the stomach because of the fun of forgetting my main job and writing a few tips, I felt tantrums. その無邪気なものが本業をすっかり忘れ、少しのチップをもらう楽しさに売り渡されて、少しでも本音を話そうものなら、怒りがこみ上げてきた。 파출부란 제도가 있기전 옛날, 요새 너도나도 아무리 가난뱅이라도 밥만 안 굶으면 다 자가용 부리듯이, 도시에선 집집마다 식모를 두고 살던 때가 있었다. 家政婦とは|||||誰も彼も||貧乏人でも|ご飯だけ||食べなければ|||使うように||||||| Before there was a system of police officers, there was a time when people in cities lived with mother-in-law in every house, as if you or the poor couldn't hunger for food. 家政婦制度が存在する前の昔、今の時代にはどんなに貧乏でも、食べ物さえ無ければ、みんな自家用車のように、都市ではどの家も女中を雇って暮らしていた時代があった。 공단이 생기면서 그 흔한 식모가 귀해지기 시작하자 남의 식모를 빼돌리다가 탄로가 나서 친하던 이웃끼리 쌈박질이 나기도 했다. 公団|||||||||||||隣同士||| With the establishment of the industrial complex, the common mother-in-law began to become rare. 公団ができて一般的な女中が貴重になり始めると、他人の女中を横取りしてばれてしまい、仲の良い隣同士で争いが起きることもあっ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