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isode 5 - 김영하 “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 - Part 4
뭐해? 들어오지 않고서. K는 그때까지 현관에 서 있던 그를 책망하듯 말했다. 그는 처름 방문하는 집에 들어가듯 어설픈걸음걸이로 안락의자로 향하여 나지막한 목소리로 K를 질책했다.
“여긴 내 집이야.”
“그래, 알아. 형 집이지. 장례는 잘 치렀어? 물론 잘 했겠지. 장례나 결혼 따위는 아무렇게나 되어도 잘 굴러가게 마련이잖아.”
“넌 왜 안 왔니?”
“별로 가고 싶지 않았다고 하면 믿을거야?”
“믿어. 아까 그 여자는 누구야?”
“그냥 여자. 괜찮은 여자지. 여기 며칠 머물 거야.”
K는 어머니의 부고를 받고서야 집으로 돌아왔다.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집을 떠난 지 오 년 만이었고 예상보다는 많이 변해 있었다. 발인하던 날, K는 그의 아파트에 가 있겠다고 말했다. 그도, 그리고 다른 누구도 K를 말리지 않았다. 어머니의 관에 흙이 덮일 때, K는 유디트와 함께 그의 아파트에서 뒹굴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자신이 치렀던 수고와 K가 누렸을 쾌락을 대비해보았다. 그러자 온몸이 무거워졌다. 그는 침실로 들어가 옷을 입은 채 잠이 들었다.
네, 이 부분입니다. 이 부분도 그렇게 대학에서 읽기에 그렇게 적합한 텍스트는 아닌 것 같은데, 그래도 이 부분을 택했던 것은 주요한 인물들 사이에 갈등이 드러나는 장면이고요. C라는 또 다른 화자와 유디트라는 여자가 등장하고 형제간의 어떤 문제들이 드러나는 장면이라서 음 재밌겠다 싶어서 이 부분을 읽으려고 했던거예요. 그런데 산동대학에서 그 읽은 그 학생은 이걸 읽지 않고, 이 뒤에 부터 읽기 시작한거예요. 이 부분을 읽었으면 괜찮았는데, 이 뒤에 부분은 시작하자마자 좀 문제가 있습니다. 지금 책이 있는 분들은 한 번 펼쳐보시면 금방 아실 수 있는데 어쨌는 이 부분도 제가 한 번 읽어 보겠습니다.
눈이 그치지 않는다. 연료계의 눈금은 이제 반을 가리키고 있다. 연료를 아끼기 위해 시동을 끄자 삽시간에 차의 온도가 서늘해진다. 아까 낮에도 영하 십이도를 기록했던 기온이었으니 지금은 더 떨어졌을 것이다. 다시 시동을 켠다.
“지겹지?”
유디트에게 말을 건네보지만 그녀는 대답하지 않는다. 대답 대신 사각사각 옷자락 부딪치는 소리가 들려온다. 철컥. 그녀가 의자를 뒤로 젖히는 기색이다.
“자게?”
“쉬잇.”
눈이 점점 더 두껍게 앞유리에 쌓이고 있다. 세계와 완벽하게 단절되었다는 느낌, 한편으로 불안하고 한편으로는 안락하다. 옷자락 부딪치는 소리가 점점 더 잦아진다. 유디트의 숨소리도 점점 더 크게 들려온다. 그녀가 지루함을 견디기 위해 자주 행하는 놀이다.
“음악 틀어줄까?”
“으응.”
가쁜 숨소리 사이로 긍정을 표하는 음성이들려온다. 그는 아무거나 짚이는 대로 테이프를 찾아 밀어넣는다. B.B. King의 블루스 앨범이다. 느리지만 끈적끈적한 비트 음이 밀폐된 차 안을 가득 메운다. 그녀는 신내림을 받는 무당처럼 무엇인가를 빠르게 중얼거린다.
“그래.그래.아. 아으. 좋아. 조금 더.”
차가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한다. 앞유리의 눈도 조금씩 흘러내린다. 그때 그녀의 왼팔이 강한 힘으로 운전대에 놓여있는 그의 오른팔을 가져다 자신의 가슴에 얹어 놓는다. 그녀의 블라우스를 헤집은 뒤에 기계적인 동작으로 그녀의 가슴을 만져주기 시작했다. 엷은 물기가 그녀의 가슴에서 느껴진다.
“널 죽일 거야. 죽일 거야.”
그녀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말들의 성조가 점차 높아진다.
“아악!”
짧고 날카로운 비명과 함께 파도치던 그녀의 몸이 천천히 사그라들기 시작한다. 그는 마지막으로 한번 강하게 가슴을 쥐어주고는 손을 뺐다.
“…멀리 다녀왔는데도 바뀐게 없어.”
아직도 눈은 그치질 않았고, 그녀가 옷 매무새를 고치며 탄식처럼 내뱉는다.
“어딜 다녀왔는데?”
“멀리, 아주 멀리.”
그는 라디오를 켰다. 계속되는 기상특보.
“영서지방을 강타한 폭설의 적설량이 오후 일곱시 현재, 72cm를 기록하고 있는가운데, 철원, 인제, 원통 지역에 모든 철도 운행과 버스 운행이 중단되었습니다. 강원도는 도 내에 전 공무원에게 비상근무령을 하달하고, 제설작업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으나, 이 시간 현재까지도 계속되는 폭설로 인하여 제설작업은 매우 더디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네, 잘 들어셨습니까. 제가 쓴 부분인데도 읽기가 아주 힘드네요. 그런데 하여간 산동대학에 앉아있는데 여학생이 이 부분을 읽는 것을, 작가가 돼가지고, 바로 앞에 앉아가지고 꽃다발도 받았어요...그 환영행사에서. 꽃다발을 들고 앉아서 이제 듣는데, 국제학부의 교수님들의 얼굴은 어두워지고 학생들도... 대부분 이제 영어를 유창하게 하는 학생들인데 ‘이게 뭔가? '하는 얼굴이고, 저는 난감해 하고있고, 비페이위 같은 작가는 영어를 잘 하지 못하기 때문에 뭔 일이 일어나는지 잘 모르고. 단지, 제 옆에 뉴질랜드 작가가 있었는데, (홍콩에서 부터 같이 이제 있었죠) 이 작가는 페미니스트, 여성 시인입니다. 강렬한 여성주의적 시대를 발표를 해온 시인인데, 이 사람은 막 웃겨가지고 죽을라고 그러는거예요. 옆에서. ‘I like it!' 이러면서 ‘너무 좋다' 이러면서 그러는데, 하여간에 그 여학생은 얼굴이 빨개져갖고 그걸 너무 열심히 읽는 거예요. 그때 그 생각이 드는거죠. 얼마나 열심히 준비했을까. 저 여주인공 말하자면 뭐 차 안에서 자위를 하는 장면이잖아요. 그래서 제 차례가 됐어요. 그 학생은 내려오고. 박수도 치고. 제가 올라가서 그 얘기를 했죠. ‘아 정말 난감하다. 내가 읽으려고 한 부분은 이게 아니라, 그앞부분인데...어쩌다 이런 사고가 벌어지게 됐다. 나는 그냥 읽으려던 앞부분을 읽겠다'고 말하고는 앞부분을 읽었지만 사실 거기 한국말을 알아듣는 사람은 한 두 명 밖에 없고, 뭐 사실 하나 마나한 짓이었습니다. 그 행사가 끝나고 나서, 뭐 그런 행사가 끝나고 나면 주최측에서 보통 저녁을 사주죠. 저녁을 먹는데, 그 비페이위가 저한테 그러는 거예요. 베이징 대학이나 (북경에 있는 대학들) 베이징 대학이나 뭐 칭화대학이나, 또는 남쪽의 샹하이 쪽에 있는 대학들은 훨씬 개방적이라는거예요. 하지만 산동대학은 이 산동지방이 원래 공자의 고향입니다. 유교문화의 산실이죠. 그 홍이병들이 (문화혁명 때 이제 그 날뛰던 홍이병들이) 전부 그 산동지방으로 몰려들어가서 공자의 묘를 파헤쳤죠. 공자의 자손들의 시체를 나무에 걸어놨어요. 유해죠. 유해를 (오래전에 묻어놓은 유해들을) 다 파헤쳐서 걸어놓고, 공자의 묘가 있던 마을을 (성인데요) 다 파괴했어요. 제가 그 가이드한테 물어봤죠. 아니 성이 상당히 높아 보이는데 어떻게 홍이병들이, 중학생들인데, 중고등학생들 아닙니까(그 나이가), 어떻게 저걸 다 파괴했냐 그랬더니, 석달동안 먹고 자면서 (거기에 텐트치고 먹고 자면서) 그 공자의 유적들을 다 파괴한 것이죠. 하여간에 산동대학이라는 곳은 그런 곳입니다. 아주 보수적인 대학이라고 그러더라고요. 그 일어났던 사단에 대해서 비페이위한테 설명을 해주니까, 비페이위가 너무나 재밌어하면서 ‘그래서 그렇게 그 선생들의 표정이 어두웠구나' 그런 얘기를하더라고요. 하여간 저로서는 난감한 일이 몇 달 전에 있었습니다.
또 오늘 이 소설을 읽어야겠다 생각한 것은, 그런일도 있었지만, 제가 이제 집에서 아이튠즈로 음악을 듣는데요. 아이튠즈를 스피커에 연결해서 듣는데, 문득 듣다가 이 책에 나오는 음악이예요. Chet Baker의 ‘My Funny Valentine'이라는 그런 곡이 이 책에 나옵니다. 랜덤하게 추천곡을 돌아가면서 틀어주기 때문에 그 곡을 자주 듣게 되진 않는데, 랜덤하게 듣다가 그 곡이 딱 걸렸어요. 그래서 이 소설 생각이 또 나더라고요. 그래서 한번 그 음악 먼저 들어보시죠.
네, 잘 들으셨습니까? 이 부분이 소설에서는 이렇게 나오는데요. 유디트하고 자살안내인이 만나는 그런 장면입니다. (not clear) 둘이서 차에 타게 되는데요. 한번 읽어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