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의 고백, 일곱 번째-1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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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의 고백, 일곱 번째
나는 쉬지 않고 쏟아내듯 이야기를 계속해 나갔다.
초대소에 들어서니 김승일이 초대소 마당까지 나와 나를 반기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못 본 사이에 팍삭 늙어 다른 노인네처럼 보일 정도였습니다. 1층에 있는 내 방에 짐을 내려놓고 2층 응접실로 올라가니 거기에는 1984년도에 만났던 1과 소속 최 부과장과 초면인 30대 후반의 남자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최 부과장은 그동안 과장으로 승진되었다며 ‘다시 만나게 되어 반갑소. 그동안 건강했지요?' 하고 인사를 했습니다.
‘일본 말은 잊지 않았겠지? 이쪽은 최 지도원이니 인사하시오.' 30대의 남자는 인사를 나누고 곧 목소리를 낮추어 용건을 말하였습니다. ‘구체적 임무는 부장 동지께서 직접 나와서 부여할 예정이오. 이번 임무는 매우 중대한 임무요. 옥화 동무가 그동안 학습을 잘 하고 영리해서 당의 신임을 받았기 때문에 이런 큰 배려가 있은 것이오. 지금 이 시간부터 단한가지 지켜야 할 일은 절대 안면 노출을 해서는 안 되니 낮에는 초대소 마당에도 나가지 말고 비밀 엄수 하시오.' 최 지도원의 주의사항은 퍽 억압적이었습니다. 초대소 마당에 들어설 때부터 느낀 기분이지만 웬지 모든 것이 전과 같지 않게 엄숙하고 무겁게 가라앉아 있는 분위기였습니다. 최 과장도 ‘옥화동무는 앞으로 김 선생의 건강도 잘 돌봐야겠소' 하고 거들었습니다. 김승일은 3년 사이에 너무나 많이 늙어 꼬부랑할아버지가 다 된 것 같았습니다. 아닌게 아니라 허리도 약간 휘어진 듯했습니다.
‘김선생님, 그동안 앓으셨어요?' 내가 그를 살펴보며 묻자 그가 죽다 살아났다고 말해주었습니다.
‘금년 봄에 위에 혹이 생겨서 제거수술을 받았지. 수술 전에 의사들이 가망성 없다고 손을 들었는데 친애하는 지도자 동지의 특별배려로 9.15 병원 전문 의사에게서 수술 받게 되었어. 온갖 정성과 기술을 발휘해 겨우 고쳤어. 그동안 체중이 15KG 이나 빠졌다니까. 요즈음도 식사를 조금씩 조절해가면서 건강관리에 온 신경을 다 쓰고 있는 중이야.' 그는 말을 하는 도중에도 숨이 차고 힘이 드는지 잠깐씩 쉬었다가 이야기를 계속하곤 했습니다. 그 몸으로 무슨 공작임무를 수행할 수 있을지 염려스러웠습니다. 늙은 환자 돌보는 일이 내 임무인가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밤 9시가 조금 지나 부장이 온다는 연락이 왔습니다. 모두 현관에 나가 도열하고 서서 부장을 기다렸습니다. 2,3분 뒤 초대소 마당에 자동차 멎는 소리가 들리더니 부장이 들어섰습니다. 부장은 저를 보자 ‘어! 옥화동무 아주 고와졌구만. 빨리 시집보내야겠는걸. 이번 임무만 잘 하고 오면 좋은 신랑감을 골라주지!' 하며 농말을 던졌습니다.
2층 응접실로 들어가며 초대소 어머니에게는 2층에 접근하지 말라는 주의를 주었습니다. 정말 중대한 비밀 임무가 주어지려는 모양이었습니다. 초대소에 모인 사람들 모두 바짝 긴장된 표정이었습니다. 농말을 던지며 나타났던 부장도 응접실에 들어서며 근엄한 얼굴로 굳어졌습니다. 초대소 응접실에도 유난히 냉랭한 기운이 감돌았습니다. 당연히 임무를 받을 장본인인 저는 크게 숨도 쉬지 못할 상황에서 임무 지시가 떨어지기를 기다렸습니다.
부장은 목소리를 낮추어 다음과 같은 지시를 내렸습니다. ‘결론부터 말하겠소. 이번에 수행해야 할 임무는 남조선 비행기를 제끼는 것이오.' 저는 그 말을 듣는 순간 제 귀를 의심했습니다. 전혀 뜻밖의 일이라 정신이 번쩍 드는 것 같았습니다. 임무 지시만 하달 받았는데도 벌써 가슴이 떨리고 겁이 났습니다. 내가 과연 해낼 수 있을까 하는 걱정도 앞섰습니다. 한편으로는 첫 임무로서는 생각지도 못했던 크나큰 임무를 내려 준 당과 김정일 동지의 신임에 어긋나지 않도록 틀림없이 해내겠다는 각오를 다졌습니다.
나는 기억을 더듬어 임무를 처음 받았을 때의 상황과 심정을 계속 이야기 해 나갔다.
나레이션 : 대남공작원 김현희의 고백, 랑독에 박수현이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