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의 고백, 스물 일곱 번째-1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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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의 고백, 스물 일곱 번째
정각 12시가 되자 최 과장과 최 지도원이 나타났다. 같이 차를 마시며 항공기 시간 안내판을 주시했다. 그런데 출발 1시간 전이 다 되어도 바그다드행 안내 표시가 들어오질 않았다.
우리가 타고 갈 비행기보다 늦게 출발할 비행기들의 안내 표시는 벌써 들어와 있었다. 뭔가 잘못되는 게 아닌가 안절부절 불안해 하다가 김 선생이 비척대면서 빠른 걸음으로 공항 안내소에 알아보러 갔다. 이번 비행기 시간에 차질이 생기면 바그다드에서 우리의 목표인 KAL858기를 놓치게 되고, 그렇게 되면 우리의 계획이 수포로 돌아가는 상황이 벌어진다.
잠시 후 김 선생이 밝은 표정으로 돌아왔다. 그의 손에는 수속을 밟은 항공권이 쥐어져 있었다. 바그다드행 IA226 편은 정시에 출발하는데 시간 안내판이 고장 났다는 것이었다. 괜한 걸 가지고 가슴 태우며 긴장했던 우리는 서로 마주보며 실소하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출발 30분 전이었다. 최과장, 최 지도원과 작별하고 우리는 탑승객 대열에 섰다.
우리는 미리 돈지갑과 여권을 꺼내들고 차례를 기다리는데 직원 하나가 우리 일본 여권의 표지를 보더니 한산한 창구로 오라며 대강 여권만 훑어보고는 통과 신호를 했다. 여기에서 우리는 경제대국으로서의 일본의 위세를 실감하게 된다. 먼저 비행기에 오르면 다른 사람의 시선을 받을 것 같아 면세점을 돌아보며 시간을 좀 보냈다. 탑승객이 어느 정도 비행기에 올랐을 때 우리도 따라 이라크 항공기 탑승대로 다가갔다. 항공기 입구에서도 군복 같은 옷을 입은 남녀 승무원이 소지품과 몸 검색을 했다. 여승무원은 나를 커텐 칸막이로 데리고 들어가 가방과 비닐 쇼핑백을 뒤집어 물건을 꺼내 놓고 일일이 확인하는 것이었다.
여승무원은 트렌지스터라지오에서 밧데리 4개를 빼내면서,
“비행기 내에서는 어떠한 밧데리도 소지할 수 없으니 우리가 보관하고 있다가 비행기에서 내릴 때 되돌려 드리겠습니다.”
하며 작은 비닐주머니에 넣었다. 그리고 다시 내 몸을 샅샅이 더듬으며 뒤졌다. 나는 몸을 그녀에게 내맡긴 채 다른 밧대리와 섞이면 어떻게 하나 걱정하면서 밧데리에만 신경을 썼다. 전혀 계산에 없던 일이라 말 한마디 못하고 당항 꼴이었다. 김선생은 자리에 앉으며 자기도 안전 면도기 밧데리를 빼앗겼다고 한다.
“내릴 때 돌려준다고는 하지만 안 돌려주거나, 또는 다른 사람 것과 섞여 오면 어떻게 하지요?”
김 선생에게 걱정스럽게 상의했더니 그는 “가서 우리 것을 딴 주머니에 싸 넣고 오라”고 지시했다. 내가 그 여 승무원에게 가서 다른 것들과 섞이지 않게 해달라고 부탁하자 그녀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우리 밧데리를 꺼내 보였다.
“오, 예스. 이것이 당신 것이죠? 절대 섞이는 일은 없어요.”
그녀는 자신만만하게 대답했다. 우리 밧데리는 겉으로 보기에는 다른 전지약과 차이가 없지만 전지약을 싼 투명 셀룰로이드 테이프를 살짝 긁어 흔적을 만들어 놓았기 때문에 곧 알아 볼 수 있었다. 그날 저녁 7시쯤 바그다드공항에 도착했다. 비행기가 멈추자 한 승무원이 통과여객은 손을 들어보라고 한다. 우리 외에도 서양 남녀가 있었다. 승무원은 통과여객은 그 자리에 앉아 기다리고 다른 손님은 먼저 내리라고 말했다. 그 여승무원이 “이게 맞느냐”고 확인까지 해가며 밧데리 4개를 되돌려 주었다. 이것을 엷은 청색 비닐 쇼핑백에 넣으면서 우리는 정말 아슬아슬한 고비였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바그다드 공항에 도착하자 이곳 역시 전쟁 지역답게 검색이 철저했다.
나레이션 :대남공작원 김현희의 고백, 랑독에 박수현이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