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의 고백, 열 한 번째-1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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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의 고백, 열 한 번째
최 지도원은 미국제 말보로 담배 두 갑을 꺼내 놓았다. 그건 독약 엠플이 든 위장된 려과 담배였다.
“독약 앰플이 들어 있는 담배 개비는 필터 끝에 담배 가루를 붙여 놓았고 담배갑이 뜯긴 쪽에 있으므로 쉽게 찾을 수 있을 것이오. 극한 상황이 올 경우 옥화 동무에게도 한 갑을 주시오.”
김 선생은 나의 독약 담배까지 함께 보관했다. 그때는 벌써 독약 앰플이 든 담배를 깨물어야 하는 순간이 온 것처럼 비장한 분위기였다. 망설임 없이 그것을 깨물 수 있을지는 당해 보지 않고는 모를 것이라고 생각하며 김 선생의 심정은 어떨까 궁금했다. 나의 심정은 한마디로 약간 불안하고 걱정스러웠다. 또 한편 이미 대단한 역전용사가 된 것 같은 기분도 없지 않았다. 하루하루 출발 날짜가 임박해 왔다. 말보로 담배 이외에도 필요한 공작 장비가 지급되었다. 나에게는 녹색 스웨터, 구두, 겨울용 코트, 원피스, 여자용 손목시계, 인조가죽 손가방, 콤팩트, 립스틱, 아이라이너 등 화장품과 수첩, 작은 연필, 여행용 가방 등이 주어졌다. 모두 일본 제품이었다. 평양을 떠나기 이틀 전인 11월 10일에는 저녁에 부장과 동석식사가 베풀어졌다. 동석식사에는 최 과장, 최 지도원도 참석했다.
“알다시피 이번 임무는 친애하는 지도자 김정일 동지께서 친필로 지령하신 과업이니 어떠한 문제도 제기해서는 안 되오.” 부장은 김정일의 친필 지령에 대해 강조했다.
“이번 임무의 목적은 이미 말했듯이 두 개의 조선을 책동하려는 남조선의 88서울 올림픽 개최에 큰 타격을 주기 위한 것이므로 대단히 중요하고도 어려운 일이오.” 식사를 하면서 부장은 몇 가지 당부의 말을 하였다.
“두 동무는 모레 출발하게 되오. 옥화 동무의 임무는 전 행동 노정에서 김승일 선생의 딸로 행세하면서 항공료를 제외한 모든 비용 소모를 담당하고 김선생이 라디오를 작동치 못할 상황이 발생하면 대신 작동시키는 일이오.”
대 임무를 앞두고 부장의 심각한 지시를 받는 저녁식사는 아무런 맛도 느낄 겨를 없이 열기만 감돌았다. 나는 그날 저녁 무엇을 먹었는지 기억조차 없다. 그만큼 앞일에 대한 약간의 흥분감, 기대감, 불안감 등으로 만감이 서려 식사는 그저 습관적이고 의례적인 손놀림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최악의 경우는 소지하고 있는 극약을 깨물어 비밀을 고수함으로써 끝끝내 임무를 다 하시오. 남조선 비행기 내의 모든 상황을 잘 료해하고 복귀 후 총화시 상세히 보고하오.” 부장은 우리에게 공작금으로 미화 1만 불을 주었다. 그리고는 김 선생은 무시한 채 나에게, “전투 준비는 다 되었는가? 주어진 임무는 자신 있게 완수할 수 있겠지?” 하고 물었다. 나는 혁명 전사답게 큰소리로, “준비는 다 되었습니다. 자신 있게 임무를 수행하겠습니다. 최악의 경우 혁명 전사답게 지시하신 대로 스스로 자결하겠습니다.” 라고 답변하여 결의를 표했더니 부장은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좋소, 좋소. 자 건배를 합시다.”
부장은 각자의 잔에 인삼주를 따라 주고 건배를 제의했다. 모두 술잔을 높이 들자 그는, “이번 임무는 지도자 동지의 관심이 높소. 꼭 성공하고 무사히 돌아오기를 기다리겠소. 위대한 수령님과 친애하는 지도자 동지의 신임과 배려로 남조선 해방을 위한 전사로서 적후로 떠나는 동무들의 건강을 빌겠소. 또 부여된 과업을 성공적으로 수행하기를 바라면서, 건배! 하고 격려해 주었다. 이 말을 받아 김승일이, “저희들에게 부여된 과업을 성공적으로 수행하여 위대한 수령님과 친애하는 지도자 동지의 크나큰 신임과 배려에 기필코 보답하겠습니다.” 하고 답변했다.
나레이션 : 대남공작원 김현희의 고백, 랑독에 박수현이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