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의 고백, 열 여섯 번째-1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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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의 고백, 열 여섯 번째
저녁식사 후 최 과장과 최 지도원은 모스크바에서 앞당겨진 일정을 어디 가서 늦출 것인가 협의하고 있었다. 협의 결과 부다페스트가 좋겠다고 결정되었다.
밤 9시가 넘어서자 안내를 맡았던 지도원이 비행기 시간에 맞추려면 빨리 출발해야 한다고 재촉해대기 시작했다. 김승일은 장시간의 비행기 여행으로 지쳤는지 축 늘어져 있었다. 이제 여행 초반인데 저렇게 힘들어 하니 과연 저런 몸으로 과업을 수행할 수 있을지 걱정이었다.
우리는 모스크바공항으로 나갔다. 밤 늦은 시간이라서 공항은 한산했다. 가끔 털모자에 슈바와 부츠 차림을 한 멋진 소련 여성과 아이들이 지나갔다. 이국적인 풍경에 눈길이 끌렸다. 평양을 떠나 타국 땅에 와 있다는 실감이 피부로 느껴졌다. 일행은 부다페스트로 떠나는 소련 항공기에 몸을 실었다. 비행기에는 손님이 절반밖에 차 있지 않았다.
처음부터 일이 순조롭게 진행되지 못하고 일정이 변경되어 고생하는 것이 짜증스럽고 불길했다. 우리의 임무가 제대로 수행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일었지만 노련한 김선생이 어련히 알아서 하겠는가 하고 마음을 돌렸다. 이런저런 생각에 잠겨 있는 내 옆에서는 김 선생이 다른 사람에게 민망할 정도로 심하게 코를 골아대며 잠들어 있었다. 비행기는 모스크바 공항을 떠나 어두운 밤하늘을 날아갔다. 끝없이 펼쳐진 밤하늘에는 꼬마전구로 장식한 것처럼 별들이 반짝이고 있었다.
비행기는 1시간 반쯤 지나 부다페스트공항에 착륙했다. 시차 때문에 그곳 시간은 새벽 4시경이었다. 공항은 조용하고 텅비어 있었다. 아무도 마중 나온 사람이 없어 최 과장이 대사관에 전화를 걸었다. 한 가지 일이 꼬이기 시작하더니 연속 일이 뒤틀려 나갔다. 모스크바에서 쉬지도 못하고 을씨년스러운 자정 비행기를 타고, 폐쇄된 것처럼 텅 빈 부다페스트공항 마중인도 없이 새벽에 도착하여 전화 연결을 기다리고 있자니 은근히 부아가 치밀었다. 조짐이 좋지 않다는 방정맞은 생각을 억지로 털어냈다. 얼마 뒤 대사관에 차를 몰고 나온 운전수는 우리를 안내할 전 지도원이 비엔나로 출장하고 없다고 알려주었다. 비밀을 고수해야 하므로 전 지도원 외에는 아무에게도 우리의 부다페스트 입국 사실을 알리지 않았던 것이었다. 운전수는 이곳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부다페스트 지리도 잘 몰랐고 전 지도원의 집도 모른다고 했다. 그래서 대사관에 들러 전 지도원의 집 약도를 그려 들고 나섰다. 집 약도와 시가지 지도를 펼쳐 보며 전 지도원의 집을 찾아 헤맸다. 새벽녘이라 어두운데다가 길을 물어 볼 행인도 없어서 한동안 애를 먹었다. 누군가가 우리 일행을 골탕 먹이기 위해 일부러 그러는 것처럼 매사가 뒤틀렸다. 일이 순조롭지 못하자 실지보다 열 배 스무 배 피곤하게 느껴졌다.
몇 시간을 헤맨 끝에 겨우 전 지도원의 집을 찾았다.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 모두들 한숨을 쉬었다. 전 지도원이 숙소로 사용하는 집은 대외정보조사부 초대소였다. 부다페스트 시내에 전차길 옆 2층 단독주택이었다. 근처에는 우체국이 있고 문 앞에는 98이라는 지번이 적혀 있었다. 찾아 놓고 보니 쉽게 찾을 수 있는 위치였는데 그렇게 애를 먹은 것이 억울했다. 캄캄할 때 집을 찾아 나섰던 것이 집을 찾았을 때는 훤히 날이 밝아 오는 아침이었다. 문에 달린 벨을 누르자 키가 훤칠하고 날씬한 30대 중반의 젊은 여자가 뛰어나와 우리를 맞았다. 40대 중반인 전 지도원의 부인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을 만큼 그녀는 젊었다. 후에 최 지도원이 그녀는 전 지도원의 후처라고 알려주었다.
우리 일행은 초대소 2층에 짐을 풀고 각자 방을 정했다. 최과장과 최 지도원은 응접실에 침대를 펴 잠자리를 만들었다. 우리 일행은 초대소 2층에 짐을 풀고 각자 방을 정했다 최과장과 최 지도원은 응접실에 침대를 펴 잠자리를 만들었다. 우리는 김 선생이 너무 무리해서 쓰러질까봐 몹시 걱정이 되었다.
나레이션 : 대남공작원 김현희의 고백, 랑독에 박수현이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