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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발췌문 (Literary Excerpts), 박상륭, 『죽음의 한 연구』 중에서

박상륭, 『죽음의 한 연구』 중에서

공문(空門)의 안뜰에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바깥뜰에 있는 것도 아니어서, 수도도 정도에 들어선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세상살이의 정도에 들어선 것도 아니어서, 중도 아니고 그렇다고 속중(俗衆)도 아니어서, 그냥 걸사(乞士)라거나 돌팔이중이라고 해야 할 것들 중의 어떤 것들은, 그 영봉을 구름에 머리 감기는 동녘 운산으로나, 사철 눈에 덮여 천년 동정스런 북녘 눈뫼로나, 미친 년 오줌 누듯 여덟 달간이나 비가 내리지만 겨울 또한 혹독한 법 없는 서녘 비골로도 찾아가지만, 별로 찌는 듯한 더위는 아니라도 갈증이 계속되며 그늘도 또한 없고 해가 떠 있어도 그렇게 눈부신 법 없는데다, 우계에는 안개비나 조금 오다 그친다는 남녘 유리(羑里)로도 모인다.

유리에서는 그러나, 가슴에 불을 지피고는, 누구라도 사십 일을 살기가 용이치는 않다. 사십일을 살기 위해서는 아무튼 누구라도, 가슴의 불을 끄고, 헤매려는 미친 혼을 바랑 속에 처넣어, 일단은 노랗게 곰을 띄워내든가, 아니면 일단은 장례를 치러놓고 홀아비로 지나지 않으면 안 될지도 모른다. 또 아니면, 사막을 사는 약대나, 바다 밑을 천년 한하고 사는 거북이나처럼, 업(業) 속에 유리를 사는 힘과 인내로써, 운산이나 눈뫼나 비골을 또한 이겨낼 수 있는 것은 아닌 것인데, 이리의 무리는 눈벌판에서 짖으며 사는 것이고, 지렁이는 흙밑 습습한 곳에서라야 세상은 안온하다고 하는 것이고, 신들은 그렇지, 그들은 어째도 구름 한자락 휘감아 덮지 않으면 잠을 설피는 것이다. - 처음에는, 자기에게 마땅스럴 장소를 물색하겠다고 여기저기로 싸돌아 다니다가, 찾기는 커녕 마음에 진공만 키워 버린 뒤, 타성에 의해서 그 진공 속을 몸 가지고 밖으로 한없이 구르고 있는 듯이 보이는, 아흔 살은 되었음직한 그 중의 얘기대로 하자면, 그러하다. 즉슨, 모든 고장들이 다 그곳대로의 아름다움과 그곳대로의 고통을 지니고 있었다.

"토생원에게는 풍류인 여산의 새벽달이며 무릉의 가을 바람도 별주부에게는 고통일 뿐인 것이지." 그 늙은 중의 이야기는 그렇게 시작되고 있었다.

작가_ 박상륭 -- 소설가. 1940년 전북 장수 출생. 1963년《사상계》신인상으로 작품활동 시작. 장편소설『죽음의 한 연구』,『칠조어론』 소설집 『열명길』, 『아겔다마』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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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륭, 『죽음의 한 연구』 중에서

공문(空門)의 안뜰에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바깥뜰에 있는 것도 아니어서, 수도도 정도에 들어선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세상살이의 정도에 들어선 것도 아니어서, 중도 아니고 그렇다고 속중(俗衆)도 아니어서, 그냥 걸사(乞士)라거나 돌팔이중이라고 해야 할 것들 중의 어떤 것들은, 그 영봉을 구름에 머리 감기는 동녘 운산으로나, 사철 눈에 덮여 천년 동정스런 북녘 눈뫼로나, 미친 년 오줌 누듯 여덟 달간이나 비가 내리지만 겨울 또한 혹독한 법 없는 서녘 비골로도 찾아가지만, 별로 찌는 듯한 더위는 아니라도 갈증이 계속되며 그늘도 또한 없고 해가 떠 있어도 그렇게 눈부신 법 없는데다, 우계에는 안개비나 조금 오다 그친다는 남녘 유리(羑里)로도 모인다.

유리에서는 그러나, 가슴에 불을 지피고는, 누구라도 사십 일을 살기가 용이치는 않다. 사십일을 살기 위해서는 아무튼 누구라도, 가슴의 불을 끄고, 헤매려는 미친 혼을 바랑 속에 처넣어, 일단은 노랗게 곰을 띄워내든가, 아니면 일단은 장례를 치러놓고 홀아비로 지나지 않으면 안 될지도 모른다. 또 아니면, 사막을 사는 약대나, 바다 밑을 천년 한하고 사는 거북이나처럼, 업(業) 속에 유리를 사는 힘과 인내로써, 운산이나 눈뫼나 비골을 또한 이겨낼 수 있는 것은 아닌 것인데, 이리의 무리는 눈벌판에서 짖으며 사는 것이고, 지렁이는 흙밑 습습한 곳에서라야 세상은 안온하다고 하는 것이고, 신들은 그렇지, 그들은 어째도 구름 한자락 휘감아 덮지 않으면 잠을 설피는 것이다. - 처음에는, 자기에게 마땅스럴 장소를 물색하겠다고 여기저기로 싸돌아 다니다가, 찾기는 커녕 마음에 진공만 키워 버린 뒤, 타성에 의해서 그 진공 속을 몸 가지고 밖으로 한없이 구르고 있는 듯이 보이는, 아흔 살은 되었음직한 그 중의 얘기대로 하자면, 그러하다. 즉슨, 모든 고장들이 다 그곳대로의 아름다움과 그곳대로의 고통을 지니고 있었다.

"토생원에게는 풍류인 여산의 새벽달이며 무릉의 가을 바람도 별주부에게는 고통일 뿐인 것이지." 그 늙은 중의 이야기는 그렇게 시작되고 있었다.

작가_ 박상륭 -- 소설가. 1940년 전북 장수 출생. 1963년《사상계》신인상으로 작품활동 시작. 장편소설『죽음의 한 연구』,『칠조어론』 소설집 『열명길』, 『아겔다마』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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