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작원 초대소, 여덟 번째-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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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원 초대소, 여덟 번째
우리는 6개월마다 한 번식 ‘창광원'에 나가 파마를 했다. 천리마거리에 있는 창광원은 1978년경 전민이 달라붙어 건설한 북조선에 1개밖에 없는 최고 시설을 갖춘 편의소이다. 그 안에는 수영장, 목욕탕, 한증탕, 미용실, 리발소 등이 있는데 시설이 좋아 그 값이 2~3 배가 비싸다. 또한 외국인 참관코스이기도 하다.
그러나 교육훈련 중에는 휴가나 가족 면회는 절대 허용되지 않는다. 우리 공작원의 위치와 하는 일 모두가 비밀로 되어 있다.
우리는 금성정치군사대학에서 정치사상과 실무에 대하여는 이론서적을 교재로 하여 강의를 받고 토론을 했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김일성 혁명력사'에 대한 교재로는 <항일 무장투쟁 시기의 회상기> 36권, <인민들 속에서> 30권, <인민의 자유와 해방을 위하여> 30권 등 김일성의 영도력과 위대성을 선전하는 책자들이었다. 총 250시간 중 강의 200시간과 50시간의 토의로 진행된다.
김일성의 어린 시절, 중학 시절, 초기 혁명활동, 항일 무장투쟁활동과 북조선 건국활동, 사회주의제도 수립, 그리고 조국 해방 전쟁과 복구건설시 김일성이 지도한 로정, 당시의 방침과 현명한 령도력이 그 주내용이었다.
‘김일성 로작'에 대하여는 <김일성 저작선집> 20권, <김일성 저작집> 35권, 기타 덕성자료 책자를 교재로 총 180시간 중 강의 120시간, 토의 60시간으로 꾸려간다. 주 내용은 항일 무장투쟁 시기에 내놓은 김일성 로작, 1930년 7월 카룬회의에서 내놓은 로작 ‘무장투쟁을 광범히 전개할 데 대하여', 1937년 2월 내놓은 ‘무장투쟁을 국내 깊이 전개할데 대하여', 해방 후 건국사업 시기에 내놓은 로작, 조국 해방전쟁 시기에 내놓은 로작, 사회주의 건설 시기에 내놓은 로작과 당위원회 제 1기 2,3,4차 등 회의에서 내놓은 로작 등이었다. 그 외에도 ‘남조선 혁명과 조국통일에 관한 수령님의 사상과 리론' 180시간, ‘김일성 주체철학' 180시간, ‘김정일 혁명력사' 250시간, ‘사회, 정치, 경제학' 220시간의 정치 사상 학습이 이루어졌다. 다음은 공작 실무에 대한 학습인데 ‘대외정보사업', ‘항일 무장투쟁 시기와 남조선 혁명투쟁 경험', ‘국제 환경' 등으로 나누어 강의했다. ‘대외정보사업'은 포섭 대상자 선발 원칙과 대상지 요해 방법, 접근방법, 대상자 교양 방법과 정보 조직 및 침투 방법 등 공작원이 현실적으로 겪어야 하는 구체적 상황을 가르치는 내용이었다. ‘항일 무장투쟁 시기와 남조선 혁명투쟁 경험'은 실지 경험을 토대로 혁명투쟁에서 얻은 경험, 항일 무장투쟁 시기에 지하공작을 했던 김정숙의 공작 경험과 기타 항일투사들의 투쟁 경험과 교훈 등을 학습했다. 그 외에도 ‘국제환경'은 주로 세계 각국의 려행 안내 책자를 많이 활용하였는데 그중에서도 자본국가들의 예의범절, 생활풍습, 지리적 특성, 법 질서와 역사 등을 내용으로 한 것을 학습했다. 금성정치군사대학에서 교육 중 가장 힘든 것은 군사훈련이었다. 이것은 육체적 정신적인 극한 상황에 대한 극복 훈련이라 할 수 있었다.
‘격술' 훈련은 보통 남자 2명을 제압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우는 것을 목표로 한다. 손, 발, 팔꿈치를 리용하여 급소를 정확히 치는 훈련이었다. 훈련방법은 새끼로 감싼 기둥을 타격하여 손을 다지고 반복 훈련을 계속하였다. 이 훈련은 매일 30분간씩 실시한다.
‘행군'은 매일 야간에 1시간씩 10kg의 배낭을 지고 4km의 산악을 행군하고 매주 토요일에는 같은 10kg 배낭을 메고 25km를 3시간 산악 행군했다. 김일성 생일을 맞으면서는 김일성 생일인 4.15를 기념한다는 의미에서 415리를 행군했다. 이 행군은 ‘충성의 행군' 이라고이름이 붙여졌다. 나레이션 : 대남공작원 김현희의 고백, 랑독에 박수현이였습니다.